우리나라의 백화점은 제품을 매입하여 재고 책임을 지고 판매하는 서양의 매입백화점과 달리 재고 책임을 지지 않고 판매된 제품에 대한 수수료를 부과하는 위탁소매업이다. 일본에서 비롯되어 주로 동양권에 널리 퍼져있는 위탁백화점은 위험부담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기형적 구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백화점은 제조업체에게 판매할 공간을 제공하는 대가로 판매수수료를 징수한다. 백화점의 제품은 각 제조업체 소유이며 판매원 또한 제조업체 직원이다. 점포 공간 제공만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제조업체가 수행하는 셈이다. 따라서 한국의 백화점은 엄격한 의미에서 유통업이 아니라 점포임대업이라 할 수 있으며 제조와 유통의 미분리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러한 현상은 백화점 매출의 약 85%를 차지하는 패션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과거 패션 위탁전속대리점(하나의 브랜드만을 판매하는 가두 대리점, 예: 빈폴 대리점, 나이키 대리점)은 약 30-35%의 판매수수료를 취하였으며 여기에는 판매사원의 급여, 일반관리비, 임대료가 모두 포함되었다. 따라서 제조업체는 판매대금의 약 65-70%의 수익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화점의 경우 임대료에 해당하는 판매수수료만도 약 35%에 달하며 이 외에도 판매사원의 봉급, 일반관리비, 판촉비 등 매출의 약 15-20%를 제조업체가 추가로 부담한다. 백화점이 확산됨에 따라 제조업체가 부담하는 의류 유통비용이 더욱 증가한 것이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약 55%에 해당하는 유통비용과 20-30%의 재고비용을 부담하기 위해서는 제조원가의 약 5배의 소매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우리나라 의류 산업의 관행이다. 수수료 백화점제도의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수료제도는 임대제도보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더욱 부담이 되는 제도이다. 임대제도 하에서는 특정 제조업체의 매출 실적이 단기적으로 저조하더라도 일정 임대료를 내고 영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수수료 부과 제도 하에서는 저조한 매출 실적은 낮은 수수료 징수로 이어지므로 실적이 저조한 업체는 퇴출된다. 이 제도 하에서 입점업체는 퇴출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기 물건을 자기가 스스로 구매하여 수수료를 납부하는 비참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입점업체의 판매장은 자사와 백화점의 매출 증대 강압에 시달리다 자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몇몇 입점업체는 과다한 수수료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자 급기야 가짜 제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높은 운영비용의 부담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사양화된 백화점 업태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번창하고 있는 이유로는 첫째, 소수 백화점 업체에 의한 과점과 이로 인한 갑의 횡포, 둘째, 우리나라 소비자의 백화점 쇼핑의 선호, 셋째, 의류 제조업제의 백화점 입점 선호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직은 우리나라 소비자가 백화점의 폐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백화점의 살인적인 수수료를 인지한다면 보다 더 똑똑한 쇼핑을 할 것이라고 사료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백화점의 번창에 의한 높은 패션 가격이 외국의 인터넷 쇼핑몰 가격과 대비되면서 해외 쇼핑사이트에서 직구하는 소비행위가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이 현재와 같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고 경영효율화에 주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백화점이 몰락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며 백화점의 쇠락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유통선진화를 진전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백화점의 번창은 의류가격 인상의 패해 뿐 아니라 의류대리점의 몰락을 가져왔다.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의류대리점의 몰락은 이를 운영하던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화점이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근대화에 기여한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진정한 소매기능(구색 갖추기, 재고부담, 판매 등)을 수행하지 않고 과다한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백화점 수수료 제도의 개선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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