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단풍, 그리고 고요한 평화

▲ 여행사업에 지원한 경영학과 학우 3명이 단풍을 보며 감탄하고 있다.
▲ 여행사업에 지원한 경영학과 학우 3명이 단풍을 보며 감탄하고 있다.

시험이 끝난 뒤의 아침이었다. 학보사 여행 사업에 지원해준 김가을(경영·4) 학우와 김재준(경영·3) 학우 그리고 조현중(경영·2) 학우와 소요산을 거쳐 백마고지로 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새로운 곳을 가보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일반적인 관광지로 가는 것이 아닌 잘 알려지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동행 기자로 가게 된 필자는 여행 사업에 지원해준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역시나 1호선의 아침은 붐볐고 편히 앉아서 갈 수는 없었다. ‘이 열차에 탄 사람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이번 여행을 멋들어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을 하는 동안 열차는 종착역인 소요산에 도착해 있었다. 1호선을 주로 이용하는 필자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소요산행’열차를 봤었고 그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항시 궁금했었다. 그러던 중에 직접 와보니 무언가 미지의 곳을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요’ 무슨 뜻일까. 사전에 찾아보니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소요산의 명칭도 우리가 흔히 김삿갓이라고 알고 있는 김시습이 이 산을 찾아 소요했다고 하여 붙여졌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곳은 시험이 끝나고 잠깐의 자유를 얻은 우리가 소요하게 될 여행지였다. 
 
소요하는 산과 김삿갓의 시(詩)

 소요산에 도착하기 전 지하철에서 한 어르신께 소요산 단풍이 어떻냐고 물어보니 소요산은 “경기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세가 아름답고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분의 말대로 역을 나와 바라보는 소요산은 화려한 단풍을 뽐내고 있었다. 1호선의 종점인 소요산에는 노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입은 알록달록한 등산복은 소요산의 단풍과 잘 어울렸다. 단풍을 입은 노인들에 휩쓸려 들어간 소요산, 아름다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소요산 역부터 소요산까지의 거리가 사람들로 꽉 찰 정도로 많지만 소요산은 모두를 끌어안는다. 소요산 입구에는 트로트 소리와 함께 밤 굽는 냄새가 어우러져 한껏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소요산 위의 흰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김시습-

 

 
입구에서 받은 팸플릿은 산을 오르는 4가지 코스를 설명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2시간짜리 코스를 선택했다. 우리는 젊기에 등산하는데 2시간이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고 넉넉잡아 3시간을 투자하면 소요산의 단풍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산을 내려올 때 쯤 우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산을 오르내리는 총 시간은 4시간 40분이 걸렸기 때문. 돌아보면 이 엉터리 판단에 웃음이 난다.
오랜만에 얻은 자유의 기쁨 때문일까 우리는 열정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생 끝에 온 소요산을 반드시 정복하리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소요산의 경사는 가팔랐다. 동네 뒷산정도로 생각했던 소요산은 이런 우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파른 오르막길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그러나 이 오르막은 우리의 오기를 더욱 자극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까지 가봐야지’하며 산을 올랐다. 
열정적으로 산을 오르던 중 누군가 말했다. ‘이봐 젊은이 조금 천천히 가지’ 뒤를 돌아보니 중년의 어르신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간만의 자유를 느끼고 소요하기 위함이지 무언가에 얽매이려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을 정복하려는 마음에 얽매여 본연의 취지를 망각하고 있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껏 올라왔던 과정을 되짚어보니 앞사람의 뒷 모습만을 보며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의 경관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말이다. 
잠시 멈춰 걸어온 곳을 돌아보니 정상이 아님에도 소요산은 엄청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한 사실인 듯하지만 산은 정상만이 멋있는 곳이 아니라 가는 과정 모두가 멋있다는 것을 산알못(산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우리는 처음 느꼈다. ‘역시 산잘알(산을 잘 아는 사람)은 다르다’며 노인의 지혜에 감탄했다. 오래전 김시습도 기어이 정상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우를 범했을까.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고는 시 한 수를 멋들어지게 지어보지 않았을까.
산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은 따끈한 소머리국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최종 목적지인 백마고지역으로 출발했다. 이미 해는 소요산 뒷자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기차는 등산으로 피곤해진 우리를 실어 날랐고 도착한 철원 백마고지역에서는 소요산과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날씨가 달랐다. 기차를 타고 온 40분 정도가 계절을 앞당긴 느낌이었다. 소요산으로 출발할 때의 수원도 꽤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이곳은 완전히 겨울이었다. 
‘이곳에서 군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꽤나 고생하겠구나’고 생각하며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를 바라봤다. 중단된 철도가 북한까지 연결됐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한 이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철마가 달리게 된다면 어떤 복잡한 견해들이 나올까’라는 어려운 의문을 머릿속에 그리며 숙박하기로 했던 마을회관으로 갔다. 이곳의 마을회관은 깔끔하고 아늑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마을회관은 지친 몸을 쉴 수 있게 했다.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평화를 생각하다.

 다음날 우리는 비무장지대로 출발했다. 사실 비무장지대로 갔다기 보다는 바로 그 앞까지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비무장지대를 가려면 남방한계선을 통과해야하는데 민간인은 그곳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DMZ(De Military Zone)라고도 불리는 비무장지대는 우리나라 분단의 아픔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다. 먼 도착한 철원평화전망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이북의 모습과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전망대 앞으로 보이는 피의 능선과 백마고지는 그야말로 전쟁이 일어났던 ‘터’이다. 피의 능선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한국전쟁 당시 고지전투를 했던 군인들의 피로 덮여 붉게 물들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백마고지에 얽힌 이야기는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생생히 전해준다. 당시 한국전쟁에서는 고지를 차지하는 쪽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산의 소유권을 두고 엄청난 격돌이 이뤄졌는데 이 때문에 산의 주인은 스물네 번이나 바뀌게 되고 27만 발의 포화로 인해 산의 고도는 1m나 낮아졌다고 한다. 
 
▲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끊어진 철길을 걸어본다. 철길 앞은 남방한계선.
▲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끊어진 철길을 걸어본다. 철길 앞은 남방한계선.
포성과 총성이 울리던 곳은 어느덧 조용한 자연으로 돌아가 있었다. 
 
평화의 고요함이 숨쉬는 비무장지대.
  
 이 외에도 남방한계선 너머에 듬성듬성 있는 북한초소를 볼 수 있었는데 북한 군인을 보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우리 옆에 있던 어르신들의 말이었다. 우리 말고도 어르신들 몇 분이 견학을 오셨는데 ‘언제쯤 통일이 돼서 저 땅을 밟아보나’는 말에서 분단의 씁쓸함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그 사람들은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힘들었던 대한민국을 회상하는 듯했다.
평화전망대를 견학하고 제2 땅굴을 거쳐 도착한 월정리 역에서는 끊어진 철길과 폐허가 된 간이역을 볼 수 있다. 끊어진 철길 앞으로 남방한계선이 보이는데 말로만 듣던 남방한계선을 눈으로 보니 북과의 물리적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철길은 끊어져 있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이곳의 철마는 달리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현장에 있으며 아픔을 봐온 비무장지대는 서로의 총부리를 거두길 그리고 한반도에 평화가 다가오길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한반도는 군사적 대립과 남북 간의 갈등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힐링이란 주제로 이곳을 왔지만 다음에는 통일이 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올 수 있었으면 어떨지 생각했다. 통일의 방법에 있어서 그리고 시기에 있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통일이 필요하다는 마음은 같이 갔던 학우들도 똑같았을 것이라 믿는다. 기쁜 소식을 듣고 온 이곳에 끊어진 철길이 복구되고 철마가 달리는 미래를 마음속에 그려봤다.
많은 것을 얻게 된 이틀간의 여행이었다. 소요산을 통해 잠시 돌아보라는 교훈을 얻었고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평화를 떠올렸다. 산의 능선을 따라 소요했던 기억과 평화를 기도했던 추억은 오랜 기간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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