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트.부지영.2014
▲ 카트.부지영.2014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 
“사랑합니다.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하루 종일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계산대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 매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하고 정규직의 따가운 괄시를 받는 사람들. 반말과 모욕을 일삼는 일부 진상 손님들에게 치이고 때론 차가운 바닥에 무릎까지 꿇어야만 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더 마트’ 계약직 직원들이다. 이들은 늘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지만 정작 그들의 하루는 행복하지 않다. 
 
더 마트 운영진들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접계약직을 일괄 해고하고 용역 업체를 선정해 운영하기로 계획한다. 이로 인해 약 1백여 명의 계약직 직원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받게 된다. 하루 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은 회사에 항의를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다. 결국 더 마트 계약직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부당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목소리를 높인다. 더 마트 계약직 직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을’의 목소리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무관심으로 그들을 지나치거나 오히려 왜 회사와 직원들 간의 갈등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를 봐야하냐며 오히려 그들에게 면박을 준다. 더 마트 계약직 직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일어나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싸움을 계속 이어나간다. 
 
갑-을 공화국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미 우리 사회에서 갑질은 그리 어색하거나 낯선 단어는 아니다. 지난 2014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은 우리나라를 갑질로 떠들썩하게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갑질관련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갑질을 찾아볼 수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신이 갑질을 했는지에 대해 자각조차 못하고 있다. 설령 갑질을 했다는 인식을 하더라도 “누구나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한국경제신문이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5.8%가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갑질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4.5%에 그쳤다. 갑질을 당한 사람은 많은데 정작 갑질을 한 사람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가 흔히 갑질이라고 생각하는 ‘모녀 백화점 사건’, ‘아파트 주민의 경비원 폭행’처럼 주로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 있거나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을’이 된다. 지난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감정노동자 건강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감정노동자들의 87.6%가 인격 무시 발언을 들었고 욕설이나 폭언을 들은 경험도 81.1%에나 달했다.
 
사회 지도층들의 갑질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경제신문의 또다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업별 갑질의 정도는 1백점 만점에 정치인이 87.7점 이후 법조인이 82.9점, 기업 총수가 80.6점 순이었다. 이처럼 흔히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라 불리는 지도층들 사이에서 갑질은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한다. 실제로 국회 사무처는 지난 4월 제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 공간 부족’을 이유로 국회 내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 및 노동조합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또한 공기업인 산업단지공단이 청소 용역업체에 배포한 청소과업 지시서에는 ‘작업복을 착용하면 지정된 승강기 이외에 절대 탑승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이처럼 사회의 모든 계급층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갑질 문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당신은 갑입니까? 아니면 을입니까?
갑질의 주된 원인은 권력감에 있다. 아무리 작은 권력일지라 하더라도 힘이 생기고 남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서게 되면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기 쉽기 때문이다. 계급이 양극화된 사회에서 갑질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권력에 대한 욕구가 높거나 평소 억압을 많이 당해 권력감을 회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 갑질이라는 잘못된 방식을 통해 권력감을 충족하는 경우도 한몫한다.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시작한 갑질은 결국엔 나도 모르는 새에 당연히 그래도 되는 ‘권리’로 변질된다.
 
갑질은 상대적이다. 당신이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당신 앞에 본인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갑에서 을로 추락하게 된다. 영화 속 정직원 중 한명인 최 과장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다. “안 짤리고 다니기만 하면 되지. 짤리는 인간들은 뭔가 문제가 있어도 있는거야. 능력이 부족하거나 회사에 해를 끼치거나” 계약직 직원들을 일하는 기계취급하며 푸대접하지만 자신의 생계를 쥐락펴락하는 더 마트 운영진들앞에선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처럼 상황에 따라 당신은 갑이 될 수도, 을이 될 수도 있다.

 결국엔 갑도, 을도 모두 사람이다

갑에게 억눌리고 짓밟히는 것은 절대로 을이 갑보다 열등해서가 아니다. 남보다 많은 부와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군가의 인격마저 모욕하고 짓밟을 권리는 없다. 또한 타인보다 가진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윗사람에게 인신공격을 당하고 무릎 꿇어야 할 이유도 없다. 당연한 사실을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권력 맛에 취해 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하는 사실은 갑질을 하는 사람도 갑질을 당하는 사람도 결국엔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할 인격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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