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영화나 드라마 시청을 문화생활이라고 칭하곤 한다. 다른 곳을 방문하는 것이 귀찮다는 마음에 집에서만 휴일을 보낸다. 미술관을 간다는 것이 여행이라고 하기엔 다소 거창할지 모르겠다. 정적이고 고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출발한 여행이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 가을바람같이 시원하고 가을곡식처럼 풍요로운 미술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8월 16-17일 권창모(건설시스템·2) 학우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동대문DDP ▲예술의 전당에 미술관 여행을 떠났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만나본 <이중섭 전>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보는 듯했다. 일제강점기와 독립 그리고 6·25전쟁을 한몸에 겪은 이중섭의 작품들은 고단하지만 끈질겼던 근대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대문 DDP에서 본 <백남준 전>은 아름다운 영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했다.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기술의 발전 초기에 백남준은 독창적인 창의성을 발휘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했고 후세에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샤갈, 달리 & 뷔페 전>은 ▲달리 ▲뷔페 ▲샤갈 세 작가의 특징이 뚜렷했다. 기괴하지만 신비스러운 달리와 어두운 분위기 속 경건함이 느껴지는 뷔페 그리고 빛과 색이 만연한 샤갈의 작품들은 비록 동시대에 살았지만 달랐던 작가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프리다칼로 & 디에고 전>은 얽혀있는 두 사람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멕시코미술계의 거두로 인정받는 두사람의 그림을 보며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그들의 삶속에서 피어난 그들의 다른 예술세계는 같이했지만 달랐던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중섭과 우리 -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

이중섭의 작품은 중고등학교의 교과서나 기존의 여러 매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비극적이고 가난한 삶, 보편적인 소재를 통한 담담한 그림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중섭 전이 열리는 덕수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중섭 전이 열리는 덕수궁 석조전(덕수궁 미술관)은 기존 궁의 전통양식이 아닌 근대의 양식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건물이다. 아름다운 석조건물은 전통적인 궁의 모습과 대비되지며 웅장하지만 사뭇 다른 풍경으로 서있어 석조전이 지어진 슬픈 역사를 드러낸다.

이중섭 전은 이중섭의 생애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젊은 시절의 작품부터 말년 시절의 작품까지 시대적인 배경과 맞물린 이중섭의 그림은 역사책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시관 중간 중간에는 엽서화와 은지화 그리고 편지화 등 이중섭이 작품활동을 하는 가운데 가족에게 보낸 엽서나 편지 혹은 심심풀이로 그린 은지화 등이 전시돼있었다. 전시된 이중섭의 그림은 민족의 해방에 대한 염원을 담은 소 그림과 가족과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 그리고 말년의 어둡고 애잔한 그림들이 대표적이었다. 이를 통해 이중섭이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예술가이며 단지 개인적인 예술가임과 동시에 민족의 염원과 미래를 걱정한 민족적 예술가임을 보여줬다. 

이중섭도 그런 인물이 아니였을까. 시대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지만 고독한 이방인, 가난한 남편이자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의 이중섭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온 듯했다.

  

외로운 이중섭과 슬픈 나

권창모 : 이중섭 전을 보고 나왔을 때는 별다른 느낌은 없었어. 다만 우리가 어릴 때부터 미술책을 통해 배운 이중섭은 말년에 외로웠던 사람이었고 미술을 열심히 그리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잖아. 그 때문인지 그림을 보면서 외로운 분위기가 많이 났어 그림을 통해서 그가 외로움이 컸고 무엇보다도 가족이랑 떨어져서 지낸 외로움과망국의 외로움 등의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그림에 녹인 듯 했어. 

전반적인 그림 전시의 배치나 작품들은 어느 정도 생각했던 방식대로 생각한 것만큼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제주도에 가서 봤던 이중섭 생가를 보고 느낀 것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였어. 제주도에서 본 이중섭 생가는 집 그 자체가 아픔을 가진 듯해서 방안에 들어갔을 때부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어. 그래서 그런지 전시의 막바지에 있던 VR(가상현실)로 표현해놓은 이중섭 생가의 전경이 오히려 재현의 방식을 취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벚꽃과 새>라는 작품이였어. 파란색 파스텔로 칠한 듯한 배경에 벚꽃나무가 있고 새가 앉은 그 그림만큼은 슬프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았어. 파란색이라는 배경 자체가 이중섭의 그림에 많지도 않았고 그 전시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작품 중 하나야.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것은 이중섭이 생전에 사용했던 파렛트야. 파렛트를 보며 그것이 이중섭의 부인 집에 걸려있었던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그의 삶이 다시 느껴져서 좋았어. 

  

▲ 이중섭의 <벚꽃과 새>
▲ 이중섭의 <벚꽃과 새>

로맨티스트들의 향연 - 거장 vs 거장 (샤갈, 달리, 뷔페) 전

예술의 전당에는 거장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20세기 미술을 보여주는 세 명의 작가는 각자의 모습으로 전시관을 메우고 있었다. 3개의 관으로 나뉘어 각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달콤한 분위기에서 몽환적인 그림을 그린 샤갈의 작품은 20세기 격동기에서도 꿈같은 이상의 나라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여러 가지 형식으로 샤갈의 빛과 여러 가지 색채를 중시한 샤갈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었다.

광기 넘치는 달리의 그림에서는 여러 가지 오브제는 달리가 생각하는 가치관을 표현하고 있었다. 시계와 달팽이 등의 오브제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며 달리의 그림에 많이 표현됐다. 예술의 순수성을 고집하며 상업화와의 분리를 추구한 타예술가와는 다르게 달리는 기업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하여 상업적이고 자극적인 작품들이 전시돼있었다.

어두운 색감과 날카로운 선을 이용한 뷔페의 그림은 당시의 어두운 사회적 배경을 암시하는 듯했다. 아름답고 예술성이 있는 소재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삐에로가 연상되는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뷔페의 그림소재는 예술가로서 현실을 직시해야한다는 날카로운 비평을 제시하는 듯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명의 화가는 모두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화가였다. 아내를 그림의 대상으로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그림에의 영감을 받았으며 아내를 통해 상처를 치유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예술품들도 결국은 이들 작가와 함께한 그들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커스를 보는 다른 눈이란

권창모 : 문득 드는 생각이 예술의 전당 전시는 항상 실망이였던 것같아. 솔직히 약 3년간 실망만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는 거장 대 거장이라는 제목에 불구하고 유명한 작품은 오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웠어. 그래서 작품은 엄청 인상깊었던 것은 따로 없었던 것 같아. 하지만 확실히 작가마다 스타일이 다르니까 이번 전시를 느낀 건 하나의 책이 있다면 책마다 챕터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어. 

이번 전시를 보면서는 서커스를 보러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뷔페도 그렇고 샤갈도 마찬가지로 서커스에 관련된 그림이 있었어. 결국 그 의미가 당시 작가들을 서커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 샤갈은 광대를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 그렸고 뷔페는 사람에 위해 희생되는 존재로 그렸어. 그래서 문득 나는 과연 광대라는 존재나 혹은 그 유사한 존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궁금해졌어.

  

날카로운 그들의 사랑 -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전 

서로가 완벽한 인연이라고 생각하여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사랑의 전말은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밝고 소소한 일상을 담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에서부터 파괴되고 괴이한 프리다 칼로의 작품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이들의 사랑의 역사를 담기에 충분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한 벽화를 많이 그렸다. 민중들의 소소한 삶을 소재로하여 단순한 색감을 활용하여 작품들을 보기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평범하다는 느낌까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적이고 관찰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당시 멕시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알게 하는 하나의 다큐멘터리였다. 

프리다 칼로의 전시관의 작품은 자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와 사생활이 복잡한 남편으로 인해 겪은 아픔을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승화시켰다. 자신을 기괴한 모습으로 표현하며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아픔을 드러냄과 동시에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화려한 색채로 불태우는 듯했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은 다른 방식으로 전시돼있었다. 밝고 따스한 분위기의 디에고 작품 전시방식과는 달리 프리다 칼로의 전시는 어두운 분위기와 작품에만 집중하게되는 조명으로 전시돼있었다. 

  

전시관을 통해 프리다 칼로를 보다

권창모 : 이번 전시를 보면서 참 슬펐던 것 같아. 칼로와 리베라 이 두사람을 같이 전시로 이끌어나가야하기 때문에 부각돼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리베라는 아픈 칼로를 잘 보살피지 않고 칼로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핀 사람이였기 때문에 참 나쁜 사람이였어. 

칼로의 작품을 보고 천경자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 천경자의 작품 중에 뱀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자기 자신의 아픔을 뱀이라는 매개를 통해 표현한 작품이였어. 천경자에게 아픔은 뱀이였고 칼로에게 아픈 것은 원숭이나 과일같은 것들이였을 거야. 그런 오브제들이 나타날 때마다 두 작가 모두 아픔을 어떤 소재를 통해 나타냈다는 것이 느껴졌어.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척추>라는 작품이였어. 작품도 작품 나름이지만 그 작품을 기피하는 방식이 좋았어. 검은색 도화지를 원뿔로 박아놓고 그런 식으로 좁아지면서 작품이 걸려있어 동굴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림에서도 울고 있는 프리다칼로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표현하려했던 것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무슨 의미로 그런 식의 배치를 한 건지는 알 수 있어서 좋았어. 이 작품 말고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에서는 별도로 인상깊었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 

  

▲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척추>
▲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척추>

다른 예술의 서막을 열다 - 백남준 쇼

백남준의 작품은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은 텔레비전 스크린과 안테나 등을 활용한 작품들은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타임캡슐같았다. 백남준 서거 10주기를 기념으로 한 ‘백남준 쇼’ 특별전시는 각 관이 5개의 특별한 테마로 이뤄져있었다. ▲1관 HOPE(희망) ▲2관 NOSTALGIA(향수) ▲3관 LOVE(사랑) ▲4관 INFINITY(영원) ▲5관 IDEA(이데아)의 각 관에는 백남준이 꿈꿨던 예술을 나타낸다. 과학기술과 인간의 합리성의 조화를 추구한 1관에서는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로봇들을 볼 수 있었다. 백남준의 열정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2관에서는 백남준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했던 스케치나 백남준이 예술활동을 할 당시의 사진이 나타나있었다. 3관 사랑의 방에는 사랑의 고백과 아름다운 영상이 흘러나오는 샹들리에가 전시돼있었다. 영원과 무한의 4관에서는 수많은 스크린들이 여러 영상을 틀어냄과 동시에 웅장한 클래식 노래가 눈과 귀를 매료시켰다. 백남준의 염원과 이상의 이데아인 5관에는 영생의 동물인 거북이가 웅장한 바다의 모습과 함께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대 최신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백남준의 작품들은 대부분 텔레비전 스크린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달랐다. 형형색색 바뀌는 텔레비전의 스크린의 모습을 보면 어느 한 형체를 가진 작품이지만 어느 각도에서 보는가, 어느 시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다른 스케일과 기존의 형식을 파괴한 그의 예술방식은 그의 예술적 혁신성과 담대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몸소 체험하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은 우리를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고 미술관이 아닌 동물원처럼 느껴지게 했다. 

 

눈으로 음악보기 

권창모 : 백남준의 작품을 보면 음악의 시각화라는 것이 생각이 떠올라. 이것이 내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것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백남준의 작품을 보다보면 내가 예전의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아. 같은 작품을 봤음에도 예전에는 별생각이 없었다면 지금은 다르게, 아예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백남준 자기자신이 첼로가 되어 첼리스트인 친구의 품에 안겨있던 행위예술 사진이였어. 활이라는 것이 얇은 현이 마찰하며 소리를 만들어가는 거잖아. 나는 그런 활질이 칼질하는 것 같아 보였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내야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야. 영화 무뢰한이 떠올랐어. 마지막 장면에 전도연이 남자주인공을 칼로 찌르고 남자 주인공이 전도연을 끌어안는 모습이 떠올랐고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말이 스쳐지나갔어. 

또 다른 작품은 거북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기피방식이 좋았어. 다 보고 내려오는 순간에 낭떠러지에서 바다로 떨어질 것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바다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거북이가 가진 이미지가 ‘불멸’, 이순신 앞에 붙는 것도 ‘불멸’, 백남준의 작품에도 ‘불멸’이라는 단어가 연관되는데 거북이를 통해 불멸의 이미지가 떠올랐어.

  

미술관 여행을 하는 동안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해보였다. 어떤 작품은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감상하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줄 알았던 이어폰은 라디오 해설이 나오고 있었다. 미술관을 관람하는 동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각자의 시선과 감각을 따라 작품의 자리에 머물며 작가의 마음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와 음료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그 순간순간에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말하는 그의 말투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이 묻어나왔다. 백남준의 <보이수가 적힌 병풍>을 보며 무대소품의 영감이 떠올랐다며 노트에 스케치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본 미술관의 주인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예술은 우리 곁에 있다. 예술은 사전적인 의미로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라고 한다. 누구는 더러 예술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며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도 그저 어떤 인물의 붓놀림과 연필자국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붓놀림과 연필자국이 일반 낙서와 다른 점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 백남준의 <거북>
▲ 백남준의 <거북>

내 마음속 비밀의 화원을 찾아...

마음통하는 친구와 미술관 여행을 떠나보자. 작품과 작가를 잘 알지 못해도 된다. 그저 마음을 편하게 갖고 작품을 바라보면 된다. 작품을 바라보는 올바른 눈이라는 것은 없다. 각자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고 각자의 마음을 통해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그것이 바로 작가와 작품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적막한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누군가와 이야기해보고 각자의 세상을 공유한다면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때 풍요로운 예술의 세계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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