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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아니지만
  • 박재연(국문) 교수
  • 승인 2016.08.3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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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장마철이었고 매일매일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제발 오늘은!”하고 비를 기다렸고 한 달 내내 엉터리 예보를 하는 기상청을 비난했다. 그런데 기상청은 잘못된 예보는 '거짓말'이었을까? 지금 비가 안 오는데 “지금 비 온다”라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런데 비가 올 것이라고 ‘추측’한 것은 비가 안 왔다 하더라도 거짓말은 아니다. 적어도 언어학적으로는 그렇다.

언어철학자 오스틴(J. Austin) 이전에는 세상의 모든 말이 참말과 거짓말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스틴은 세상에는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없는 말이 있다고 하고 그것을 수행 발화(performative utterance)라고 불렀다.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말은 실제 세계에 대한 모사(模寫)를 포함하는 말들, 그러니까 “지금 비 온다”, “2016년 하계 올림픽은 브라질에서 열렸다”와 같은 진술 발화(constative utterance)다. 그런데 “이 학우을 2학기 반장으로 임명합니다”, “영희야, 생일 축하해!”와 같은 말들은 좀 다르다. 참과 거짓을 따지려면 말과 별도로 그에 대응하는 실제 세계가 존재하여야 하는데 위의 말들은 말 자체가 ‘임명’ 행위, ‘축하’ 행위이다. 이런 말들은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없고 그 적절성만 따질 수 있다(이 설명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국문과나 영문과의 의미론 강의를 수강해 주기 바란다).

예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은퇴 선언을 했다가 번복하고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에 대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말장난이라고 했지만 언어학적으로만 말하면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약속’의 발화는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없는 수행 발화이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기껏해야 ‘부적절한 약속’이었다.

거짓말의 혐의를 벗을 수 있는 말에는 여러 가지 고유명(proper name)들도 있다. ‘들기름을 섞어 바삭바삭 고소하게 구워낸 김’이 내 입에 바삭하고 고소하지 않다 해도 이것을 거짓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철학자 밀(J.S.Mill)은 고유명은 지시의미만 있고 내포의미는 없다고 했는데(이에 대해 이견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 참거짓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수(仁秀)’라는 아이가 어질지도 않고 빼어나지도 않다고 해서 그 아이의 이름이 거짓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고유명의 면죄부에 기댄 명명의 현란한 수사 속에서 이면의 본질을 의심해 보아야 하는 말들도 많아졌다. ‘웰빙건강치킨, 우리아이안심어묵’ 같은 이름은 일반적으로 어묵과 치킨이 건강에 썩 좋지 않은 음식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웰빙건강치킨’은 약간 덜 해로운 치킨이면 다행이고 ‘우리아이안심어묵’도 아이에게 안심하고 먹이기에는 불안한 음식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하는 말에는 ‘스마트폰’도 있다. 이 말은 거짓말도 아니고 잘못 붙인 이름도 아니다. 과연 ‘폰’이 무척 ‘스마트’하다. 인간이 하기 싫은 일들을 기계에 맡겨온 역사는 짧지 않다. 힘든 빨래와 골치 아픈 길찾기 모두 기계가 한다. 이제 똑똑한 기계가 우리 대신 운전도 해 주고 ‘생각’도 해 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기계가 스마트해질수록 인간은 안 스마트해진다는 것이 함정. 우리는 예전에 얼마나 똑똑했길래 지도책 예습만으로도 처음 가는 데를 다 운전해 다녔던 걸까? 무지 똑똑한 몇 사람들이 무지 똑똑한 기계를 만들어 팔아 대다수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 지금 일어나는 일이다.

박재연(국문)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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