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1950년 6월 설립됐다. 야사에 따르면, 해방 이후 북쪽에서 중앙은행이 먼저 설립되는데 1946년 소련 점령군에 의해 설립된 조선중앙은행이 위조지폐를 만들어 남쪽 경제를 혼란에 빠트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급하게 미국 연준(연방준비은행)에 중앙은행설립에 관한 지원 요청을 하게 되고 뉴욕 연준에서 블름필드 박사와 젠슨이 파견되어 약 5개월에 걸친 한국은행법 개혁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마련했다. 이를 기초로 한국은행은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설립됐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행의 설립의 모델은 미국 연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미 연준은 한국 전쟁을 계기로 획기적인 제도적 변화를 겪는다. 1951년 한국 전쟁에 개입하기로 한·미 정부가 국채 발행을 결정하고 연준에게 구매해줄 것을 요청한다. 기존의 관행대로 정부의 국채매입을 별 잡음 없이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연준 측에서 거절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백악관뿐만 아니라 재무부 역시 놀랐다. 그리고 바로 백악관에서 대통령은 재무부, 연준 이사회 그리고 뉴욕 연준 최고 책임자를 불러 원만한 타협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결실도 보지 못하고 모임은 끝나게 된다. 이 사건은 결국 그 유명한 '1951년 재무부-연준 합의'를 도출해 중앙은행의 역사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으로 평가되며, 뜻 깊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사건 깊숙이 들어가 보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합의 이후 연준 의장이 교체되는데 국채 매입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당시 재무부 측 협상 대표인 마틴이 연준 의장이 된 것이다. 기이한 일이다. 중앙은행 독립이라고 평가받는 에피소드에서 합의 결과 협상 상대측이 연준 의장으로 온 것이다. 또 하나, 이 합의는 미 정부의 매입 요청을 연준이 거절하거나 미루는 것이 아니라 요청대로 매입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점이고 이를 자신의 주요 책무로서 삼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언뜻 이해가지 않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앙은행의 독립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로부터 독립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 내에서의 독립인 것이다. 즉 미 정부의 요청대로 국채를 매입하기는 하되 국채금리는 시장 상황을 고려하고 연준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독립은 중앙은행 운용상 독립이지 선출된 권력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하는 행정부와 완전히 결별한다는 의미에서의 독립은 아닌 것이다.
이번 달 19일은 한국은행 설립 이후 최초로 한국은행 총재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리는 날이다. 30년 한국은행에서 봉직한 내정자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로 부터 어떤 질문을 받게 될지 또 국회의원들은 역사상 최초의 중앙은행 총재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질문을 하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선택된 권력으로서 한국은행 그리고 선출된 권력으로서 정부와 국회가 어떤 관계를 맺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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