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직준비를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미숙하게나마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 첨삭을 해준 적 있다. 한달여 간 공을 들여 쓰여진 자소서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소설’이었다. 성장과정과 입사후 포부를 밝히는 자리에서는 열정과 성실함 그리고 책임감을 구겨 넣은 듯 했다. 그 취준생은 치열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막상 쓰려니 무슨 내용을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준생들은 자소서를 잘 쓰기 위해 자소서 대행업체나 컨설팅 업체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부을 뿐 아니라 자소서의 재료라고 불리는 스펙을 쌓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10여년전 스펙 3종 세트라 불렸던 ▲토익 ▲학벌 ▲학점을 넘어서 지금은 어학연수, 사회봉사 심지어 성형수술까지 포함된 스펙 9종 세트까지 나왔고 취준생들은 그 재료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이다. 이대로 10년만 더 지난다면 스펙 20종까지 나올 것 같아 무섭다.

왜 본인을 소개하는 자소서가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한 글이 돼야만 할까. 왜 자소서에 채워지는 스펙들이 이리도 많아야 할까.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기업의 잘못된 채용 시스템에 있다. 직무와 관련되지 않은 정보들을 통해 인원을 선발하다보니 지원자는 지원자대로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채용자는 똑같은 수천 개의 글을 보면서 얼굴을 붉혀야하며 나아가 채용 후에도 업무교육에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대규모 공채시스템과 업무능력이 아닌 일반능력을 고려하여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대규모 공채시스템에서는 엄청난 수의 지원자를 소수의 채용자가 심사하기 때문에 특정 지원자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기 힘들다. 이 점에서 일자리 수요에 따라 상시적으로 채용하는 미국·독일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업무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스펙으로만 지원자를 규정하다보니 비교하는 것은 쉽지만 직무에 대한 적합성은 확인하기 쉽지 않다.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스펙이 아닌 직무능력을 보는 채용기준이다. 이미 여러 조직들은 더 이상 스펙을 강요하는 것이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직무중심의 채용을 실행하고 있다. 한 예로 현대자동차는 직무와 관련없는 항목들을 2000년 이래 점진적으로 삭제해왔다. 봉사시간과 동아리활동 등의 항목들을 대폭 축소시킨 것이다. 다른 예로 정부가 지난 해 초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준 채용 제도를 도입하여 공공기관의 인재를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진행상의 문제점으로 많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조금 더 보완이 된 국가직무능력표준 안이 나온다면 충분히 스펙장벽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직무중심의 채용이 광범위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비효율성을 초래한다. 취준생 중 40%가 공직을 준비한다는 수치는 현 채용시스템에 지친 사람들이 더해저 나온 수치일지 모른다. 더 이상 성장초반의 채용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한 개인의 직무관련 역량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채용방식이 채택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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