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김태륭 축구 해설위원

 
 

 

Q. 김태륭 해설위원의 중계를 들어보면 항상 선수 입장에서 해설하는 것 같다. 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A. 해설에 있어서 공감과 이해 그리고 가장 어려운 감동의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해설을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면 좋은 해설이죠. 하지만 해설하면서 감동단계까지 이르기가 정말 힘들기 때문에 아직 전 한 번도 못해봤어요.
물론 시청자가 우선이지만 경기의 포커스를 선수에 맞추는 거죠. 선수 입장에서 해설하는 이유는 제가 선수생활을 했기에 경기를 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입니다. 몸과 상황이 안 돼서 못하는 것뿐이지 경기장에서 못하고 싶은 선수는 없어요. 선수가 실수한 것을 못한다고 하는 것보다 최대한 긍정적인 것을 말하는 거죠. 전술적인 상황이나 선수들의 움직임같은 축구적인 요소들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제 해설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 시청자들이 제가 했던 멘트를 최대한 기억 못했으면 좋겠어요. 경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선수 그리고 경기 자체입니다. 해설이 경기의 주인공이 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판정에 대해서 경기가 끝나면 기억나지 않듯이 해설도 저는 그렇게 되길 바라요. 경기는 경기 그 자체니까.
 
Q. 김태륭 해설위원이 해설을 좀 더 재밌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의외로 많았다. 해설스타일에 대한 변화를 줄 생각이 있는가?
A. 제가 재미없다는 의견을 SNS에서 많이 받았어요. 방송사마다 특징이 있는데 SBS는 축구예능입니다. 솔직히 SBS에 제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죠.
솔직히 제가 재밌게 중계하면 그 자체가 웃겨요. 그런 성향이 아닐뿐더러 터놓고 말하면 그렇게 못하겠어요. 예전에 한 PD가 저에게 ‘더 재밌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에 제가 ‘축구 중계를 재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라고 되물었죠. 개그를 치면 되는 건지 소리를 질러야하는 것인지 감도 안 오고 거부감도 있어요. 선수들은 인생을 걸고 경기하는데 제가 개그를 하면서 중계를 하는 건 못하겠어요. 솔직히 재밌게 할 자신도 없어요. 클래식한 스타일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60살까지 클래식하게 하고 싶어요.
 
Q. SBS에서 KBS로 자리를 바꾼 이유는?
A. 어차피 축구를 중계하기 위해선 어느 리그든 준비하면서 공부를 할테니 어떤 경기를 하던지 상관없어요. 다만 모든 축구인들의 꿈인 월드컵은 가고 싶었어요. 재작년 2월쯤에 KBS에서 첫 연락이 왔어요. 지금에 와서 말하는 거지만 KBS 제의를 제가 2~3번 찼어요. 그때 미쳤던 거죠(웃음). KBS에서 중계를 시작한지 3년차인 저를 장기적으로 키우면서 월드컵을 같이 준비하자고 하니까 처음에는 당연히 안 믿었죠.
월드컵 끝나고 나를 팽시킬 것 같은 불안함도 있어서 SBS PD에게 ‘사실 KBS에서 제의가 왔다’고 고백했죠. 그러자 PD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하면 SBS가 러시아 월드컵을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PD가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월드컵을 가고 싶다면 KBS가 더 좋다고 조언을 해줬어요. 그래서 SBS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KBS로 이직하게 됐죠.
 
출처: 김태륭 해설위원 페이스북
 
김태륭 해설위원의 또다른 자리는 TNT FC 감독이다. 동네의 한 축구모임에서 시작한 작은 클럽이 이젠 프로에서 아픔을 겪었거나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대학 선수들을 프로 무대로 진출시키는 국내 유일의 사회인 축구팀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10년 넘도록 TNT FC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태륭 해설위원이다.
 
Q. 현재 TNT FC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대중의 관심이 적은 축구미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A. 저도 한때 마이너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마이너를 좋아하고 선수 생활하면서 대학교 때까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려대에 갔지만 대학시절이 제일 기억이 안 좋아요. 3년 동안 공식경기 10번도 못 뛰었어요. 매년 다치고 수술하고 이상한 코치가 와서 코치랑 싸우고 학교에 탄원서 넣기도 해서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고려대에서 힘든 시간 보내고 어렵게 간 K리그에서도 뛰지 못했어요.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부천FC 1995에 가서도 프로로 활동했지만 K3리그였고요. 그래서 마이너에서 생활하면서 선수들과 교류가 많았고 덕분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던 거 같아요.
어차피 메이저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언론에서 자연스럽게 띄어주잖아요. 지금이야 제가 공중파에서 활동하는 메이저 해설가이긴 하지만 태생이 마이너인데 그걸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고 마이너에 있는 것이 좋아서 그런 거 같아요.
 
Q. 김태륭에게축구는 무엇인가?
A. 삶이자 생계수단이며 최고의 즐거움이에요. 지금도 축구하고 싶어 죽겠어요. 대부분 선수들이 은퇴하면 축구가 싫어지고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갈수록 좋아져요. 축구선수로서 성공기준을 해외로 이적하거나 K리그에서 많은 경기를 뛴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비록 실패한 선수지만 만족해요. 대학교 2학년 때쯤인가 스스로 월드컵에 나가고 해외에 나갈 선수가 나는 아니라는 것에 대해 자가진단을 내렸어요(웃음). 그 뒤로는 스스로 만족하면서 행복을 찾는 축구를 하다보니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되돌아보니 어릴 때 축구도 해외에서 해봤고 풋살 국가대표도 했었고 K리그에서 프로가 이런 거구나라는 경험도 해봤어요. 프로 선수로서 뛰지 못했다는 서러움을 부천 FC 1995에서 중심 선수로 맘껏 뛰면서 털어내니까 부족함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련없이 선수를 그만뒀죠. 지금도 축구가 좋고 앞으로도 좋아하길 바라요. 지금도 중계 일정이 받고 하면 아직도 설레는 감정이 있으니까 약빨이 남아있나 봐요.
 
Q. 지도철학으로 정직 노력 존중으로 뽑았다. 이유가 있는가?
A. 선수들한테 말한 것을 책임지려고 정직을 말했어요. 제가 선수들을 직접적으로 프로로 보낼 수 없어요. 대신 몸을 만들어주고 기회를 주는 거죠. 그 후부터는 자신들이 알아서 준비해야합니다. 정직은 그러한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말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을 의미해요.
노력은 선수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만큼 하니까 너희들도 이만큼 해야 하는 거다’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 생색내고 싶어요. 팀을 나와서 혼자 연습 한다는 건 정말 힘들기에 어려운 과정을 겪는 선수들이고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내가 바쁘지만 팀을 위해서 뭔가 노력하면 선수들도 지치고 동기부여가 떨어져도 ‘감독이 저렇게 하는데 내가 저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을까’해서 최대한 선수들에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죠.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존중입니다. 축구를 떠나서 피와 살로 이뤄진 사람과 사람과의 경기인데 한국엔 알게 모르게 감히 선수가 감독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아니라 오히려 선수들이랑 대놓고 얘기하는 게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팀 내에 이런 소통 문화 만든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요. 선수들끼리 축구를 배운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는 축구가 달라서 팀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어려워요. 그래서 서로 구체적으로 요구해서 맞춰가라고 해요. 간혹 선수들끼리 경기 중에 싸우기도 하는데 저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봐요. 터놓고 얘기해야 답을 찾을 수 있어요. 그렇게 안하면 선수들끼리 서로를 포기를 해버리는데 그러면 팀이 무너져요.
 
Q. 축구와 함께 한 많은 경험을 있을 텐데 가장 값진 경험은 어떤 것인가?
A. 어릴 때 좋은 걸 많이 봤죠. 처음부터 너무 좋은 환경을 했던 것이 선수 생활하면서 계속 비교를 하게 되니까 부담이 됐어요. 감히 선수가 비교를 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환경이나 지도자를 비교하면서 어려움을 느꼈어요. 에피소드도 진짜 많아요. 제 축구 인생 커리어에서 축구를 초등학교 때 제일 잘했어요. 어마어마했죠.
그런데 제가 축구할 운명이었다고 느낀 건 중학교 때입니다. 축구부도 없는 역삼중학교를 다녔었는데 당시 체육교사가 이운택(현 프로축구연맹 위원장)선생님이셨어요. 다른 분이 선생님에게 저를 추천해서 테스트를 보게 됐고 선발돼서 대회에 출천했는데 바로 우승하고 최우수 선수상 받고 그랬죠. 그래서 다시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신입생 때 첫 동계훈련을 가서 12게임 동안 15골을 넣었더니 지도자들이 난리가 난거에요. 중학교 시절 정보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선수가 너무 잘한다고. 그런데 한국 운동부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그 후 동계훈련이 끝나고 4일 휴가를 줬는데 혼자서 아무 연락없이 1주일 쉬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한국 운동부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딱 들어가니까 선배들이 미쳤냐는 눈으로 쳐다보고 그랬죠. 그때 주장이 김희호(현 부산 아이파크 코치)선수인데 굉장히 훌륭한 선배죠. 선배들한테서 저를 보호하고 감독님한테 바로 가라고 했어요.
그때 감독님이 저한테 강하게 하셨다면 거기서 축구를 그만뒀을 것 같아요. 결국 감독님한테 갔는데 씩 웃으시면서 ‘왜 늦게 왔어?’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 첫 프리시즌 뛰었면서 골도 많이 넣고 피곤했었고 나는 4일로는 휴가가 충분하지 않았고 가족이랑 있고 싶어서 좀 더 쉬다가 왔다’고 당당하게 말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완전 정신이 나간 놈인데 감독님이 하도 어이가 없어가지고 막 웃으셨죠. 그래도 감독님이 이제 축구부 들어왔으니까 규율을 지켜야하고 만약에 사정이 있으면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타일러 주셔서 문제없이 끝났죠. 지금도 되게 감사해요.
 
Q. 선수 시절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선수 시절 절박함을 부천 FC 1995에 와서야 느꼈다고 했는데 가장 잘한 시절에 절박함을 느낀 이유가 무엇인가?
A.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전남 드래곤즈에선 위축이 되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랬는데 부천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성격도 진짜 많이 변했어요. 팀의 중심 선수로서 책임감이 있었고 팬들이 홈경기에 와서 우리의 플레이를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부담도 있었지만 프로의식도 생기고 기분이 좋았어요. 삶의 모든 것을 부천에 투자했었어요. 게임 끝나고 매번 탈진했을 정도니까... 팬들이 있고 누군가 나의 플레이를 기다리고 응원하니까 절박했던 거 같아요.
 
Q. 김태륭에게 축구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던 거 같다. 축구에 관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어디서 보람을 느끼는가?
A. 하루 종일 축구에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제 모든 축구활동에서 느낍니다. 그런데 제 딸도 축구를 좋아해서 큰일입니다. 태교를 할 때 아내한테 미안했었는데 남들 다하는 태교여행도 못하고 미술관같은 곳 못가고 축구에 관련된 것만 같이 했어요. 아내가 만삭일 때도 TNT FC 훈련장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을 정도니까.
딸이 정말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데 애가 다른 TV는 안 보는데 축구는 가만히 봐요. 저는 여자애라 절대 축구시키기 싫거든요. 둘째가 남자애라면 축구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축구에요(웃음). 다시 말하자면 스포츠구루에선 콘텐츠를 만들고 축구를 분석하고 중계는 중계대로 포털사이트에 올리는 칼럼도 쓸 땐 힘들지만 쓰고 나면 뿌듯하니까 보람을 느껴요. 다만 딸아이가 축구를 안 봤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망설였다고 고백했던 그였지만 답변에 있어서 거침이 없었다. 클래식한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거침없는 입담은 전혀 클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솔직해서 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축구인데 어떤 축구를 하던 간에 상관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가지고 있던 축구에 대한 진심과 애정은 정말로 깊어보였다. 축구 자체가 이미 ‘김태륭’이란 사람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해설을 60살까지 하겠다는 김태륭 해설위원. 축구팬들은 그 행운을 즐기면서 중계를 들으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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