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철학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독일 관념론 철학이 대체로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헤겔 철학은 더 그렇다. 그것은 헤겔 철학을 관통하는 철학적 원리가 변증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헤겔 철학과 부딪히기 위해서는 변증법이라는 관문을 우회해서 통과할 수도 없다. 또 그가 주장하는 변증법을 정-반-합이라는 도식으로 마치 수학 공식처럼 헤겔 철학을 읽으면, 그의 철학은 볼품없이 지나치게 얇아진다. 헤겔이 철학의 원리로 내세우는 변증법은 현실과 유리된 공식이 아니라 현실을 매개로 하고, 그것도 오로지 현실을 매개로 할 때만 획득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역사철학 강의>는 난해한 헤겔 철학으로 들어가는 입문으로 추천되는 책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점 때문이다. <역사철학 강의>는 헤겔이 직접 쓴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헤겔이 베를린대학에서 가르친 역사철학에 대한 강의 원고와 이 강의를 들은 수강 학생들의 노트를 토대로 헤겔이 죽은 뒤에 만들어진 책이다. 헤겔은 베를린 대학에서 '역사 철학'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5번 했다. 이 강의는 1822-3학년도, 1824-5학년도, 1826-7학년도, 1828-9학년도, 1830-1학년도에 이루어졌으며 모두 10월에 개강해서 3월에 종강했다. 베를린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내용이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헤겔의 다른 저작에 비해 이해하기가 쉽다. 더욱이 헤겔이 자신의 거대한 철학적 체계를 완성한 이후의 만년에 한 강의이기 때문에 그의 원숙한 생각이 폭넓게 드러나 있다는 미덕도 있다.
<역사철학 강의>가 헤겔철학 입문으로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구체적 역사를 통해서 역사적 이성의 변증법적 원리를 설명하고 있어서 사변철학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다른 저서와는 달리 <역사철학 강의>에는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변증법적 원리를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헤겔이 의도하는 것은 역사의 해석이 아니다. 그가 역사철학에서 시도하는 것은 정신의 세 가지 형태, 곧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 그리고 절대적 정신이 어떻게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는가 하는 점을 밝히는데 있다. 그래서 그는 역사철학 강의에서 세계사를 이성의 변천사로 바라보며, 세계사의 구체적 내용이 이성이 스스로를 나타내는 자유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헤겔이 <엔치클로페디>에서 분류한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 그리고 절대적 정신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역사철학 강의>에서는 개인과 민족정신, 그리고 세계정신이라는 세 요소로 기술되어 있다. 특히 절대정신이 어떻게 세계정신으로 드러나는가 하는 점을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 서문을 통해서 역사를 사실을 보이는 대로 그대로 기록하는 '사실 그대로의 역사'와 우리의 반성을 통해서 기록되는 '반성적 역사', 그리고 '철학적 역사'로 구분한다. 물론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철학적 역사이다. 헤겔에 있어서 역사는 시간 안에서 정신이 자신을 스스로 전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개인의 정신과 민족 정신, 그리고 세계사적 정신을 모두 포괄한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따르면, 세계사는 동양에서 시작하지만 서양에서 비로소 자신을 인식하는 자기의식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헤겔은 동양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에서는 오직 몇 몇 사람이 자유롭지만, 게르만 세계에서는 모두가 다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헤겔이 어떻게 프로이센 국가 철학으로 사실상 역할을 했는가 하는 하나의 단서를 잡을 수 있다. 그는 프로이센의 등장을 세계정신의 완성으로 해석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교수님과 함께하는 고전여행> 코너는 우리 학교가 시행하고 있는 아주 위대한 고전 프로그램의 해제의 일부를 실어 보다 많은 학우들이 고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기획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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