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숨진 김모군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까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19살 수리공 소년의 죽음 뒤에는 서울 메트로와 그의 외주업체인 은성 PSD의 잔인한 거래가 숨겨져 있었다.

은성 PSD는 서울 메트로의 외주 업체로 스크린도어 수리 업체다. 이곳엔 서울 메트로 퇴직 직원들이 낙하산으로 정규직 자리에 앉아있다. 이들은 대부분 역무원 출신으로 스크린도어 수리 기술의 전문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월 평균 4백만 원에 이르는 월급을 받아갔다. 하루종일 스패너와 드라이버를 양 손에 쥐고 스크린도어를 고치러 이곳저곳 발품을 팔던 소년은 이들의 현금인출기에 불과했다. 소년을 비롯한 많은 비정규직 수리공들은 그들의 월급의 절반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기계처럼 일을 해야만 했다. 무능한 낙하산 정규직 인사들로 인해 비정규직은 실제로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수리공들의 몫이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제 2의 김군, 제 3의 김군과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비정규직 청년들이 언젠가 이루게 될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청년들 앞에 놓인 세상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뛰어넘을 수 없는 차갑고 잔인한 돈의 세계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경쟁 체제 속에서 더 많이 일하고 능력을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도 없이 자신의 인맥과 사회적 지위 등을 이용해 손쉽게 부를 얻은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1971년에 일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선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근대 임금노동자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자이자 임금노동의 고용주인 ‘부르주아’를 타도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 비록 이 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자기 계급의 해방을 추구할 뿐 아니라 사회의 계급적 분열 전반의 폐지를 추구했다는데 큰 의의를 가진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돈이 곧 힘이라고 생각하는 부르주아들과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근대 프롤레타리아들이 부르주아들에 대항하며 자신의 계급 해방을 요구했던 것과는 달리 현대의 프롤레타리아들은 자신의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념한 채 자신의 계급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끼니를 제대로 챙길 틈도 없이 일만 하다가 생일 하루 전에 숨을 거둔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김 군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하고 분노한 행동은 현대 프롤레타리아들이 부르주아들을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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