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초연 이후 장장 20여 년 동안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 창작 뮤지컬이 있다. <명성황후>가 바로 그 작품이다. 소설가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삼고 한국 음악계의 거장 김희갑, 양인자 부부가 작곡·작사를 맡은 뮤지컬 <명성황후>는 대한민국 뮤지컬 역사상 최초로 1천회 공연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총 1백3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진출하여 한국 뮤지컬의 대표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그야말로 명품 뮤지컬이다. 사실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뮤지컬 <명성황후>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뮤지컬 <명성황후>가 탁월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뮤지컬 <명성황후>는 우선 시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우수한 작품성이 돋보인다. 지금까지 명성황후의 일생을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이 주로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을 부각시켜 극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데 치중한 반면 뮤지컬 <명성황후>는 공연의 절반 이상을 시대적 배경의 재현과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작품의 전반부에서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정치적 대립과 임오군란 그리고 일본의 명성황후 암살 계획 등 뮤지컬이 다루기에 다소 무거운 역사적 배경들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어 단순히 개인의 비극적 죽음이 아니라 시대의 중심에 섰던 인물로 명성황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작품 의도에 따라 명성황후라는 한 인물을 특정한 시대의 상황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극적 계기가 제공된다.

또한 뮤지컬 <명성황후>는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 작품이 제작되던 1990년대 초반에는 명성황후를 그저 권력욕이 강한 인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뮤지컬 <명성황후>는 명성황후의 긍정적인 면모를 집중적으로 재조명하여 강제적인 문호개방의 위기 국면에서 국정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근대적인 여성 정치가이자 유능한 여성 외교관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에 따라 명성황후의 죽음까지도 개인적인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뛰어난 능력에서 기인한 정치적 살인이라고 재현되고 있다. 따라서 뮤지컬 <명성황후>는 명성황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통찰력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더 나아가 뮤지컬 <명성황후>의 작품 가치는 뛰어난 한국적 미(美)를 예술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6백여 벌에 달하는 형형색색의 궁중 의상과 한복의 아름다운 곡선을 강조한 독특한 안무는 절묘하게 어우러져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특히 한국적 문화를 가장 잘 표현한 수태굿 장면에서 보여준 무당의 명연기는 강렬한 붉은 조명을 받으면서 그 절정에 이른다. 한국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과 현대적 멜로디를 결합한 노래들도 마음속까지 절절하게 울려 퍼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표현은 대한민국 뮤지컬의 대표작 <명성황후>에 대한 적절한 찬사다.

이제 뮤지컬 <명성황후>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뮤지컬의 선두주자다. 명성황후 개인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그녀를 긍정적인 인물로 재구성하는 동시에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재현하여 한국의 뮤지컬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최대의 찬사를 받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뮤지컬의 역사는 <명성황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비평가들의 주장은 정당하다. 뛰어난 작품성과 예술적 아우라, 그리고 문화적 창의성 등을 고루 인정받은 뮤지컬 <명성황후>는 대한민국 뮤지컬의 미래를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어 전 세계 뮤지컬 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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