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권리를 위한 민중의 투쟁과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양심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다. 위고는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갖는 주권을 자유라 정의하고 사회의 존립을 위해 개인들이 양보해야 하는 주권의 양의 동등함이 평등이고, 평등의 토대 위에 자유가 있다고 봤다. 그리고 평등한 사회는 모든 능력에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봤다. 위고는 가난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사회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발장은 일곱 조카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헤매다 굶고 있을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 붙잡힌다. 처음에 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여러 번의 탈옥 시도로 19년을 감옥해서 보낸다. 죄를 지었으니 형벌은 당연하다는 논리에 대해 위고는 이렇게 항변한다. “이 불행한 사건에 있어서 잘못은 장발장 한 사람에게만 있었던가? 노동의 권리를 가진 한 사람에게 일거리가 없었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빵이 없었다는 것은 사회의 잘못이 아니었는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재산의 분배에서 가장 적은 몫을 탄 사람들을, 따라서 가장 동정해주어야만 할 사람들을 사회가 그 모양으로 대우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도탄 속에 신음하는 군중을 구제하라. 온갖 형식의 교육을 아낌없이 베풀어라. 약한 자와 짓밟힌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라. 모든 사람의 팔에 공장을 열어주고, 모든 능력에 학교를 열어주는 그 위대한 의무를 다하라. 이야말로 동포의 여러 가지 의무 중에서도 으뜸가는 의무임을 동정심이 있는 자들은 잊지 말 것이며, 이야말로 정치의 갖가지 요건 중에서도 으뜸가는 요건임을 이기적인 자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배경은 1815년에 나폴레옹이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하고 프랑스에 다시 왕정복고가 시작되던 시기이다. 위고는 과거는 언제나 되살아날 수 있고 시체는 부활해서 언제든지 승리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과거는 다시 정복자가 되어 그의 군사인 미신을 거느리고, 그의 검인 독재를 휘두르고, 그의 깃발인 무지를 내세우고 온다. 그것은 비웃으며 우리들 앞에 서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도 이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죽었던 과거가 되살아나더라도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과거가 아니다. 왕정복고 시기에도 파리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됐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이는 어떤 왕도 함부로 없앨 수 없는 혁명의 산물이었다. “진보는 이것에 의하여 이뤄진다. 도전하고, 고집하고, 운명에 맞서 싸우고, 불의의 힘에 대항하고, 꿋꿋이 항거하고, 완강히 저항하는, 이러한 것이야말로 민중에게 필요한 모범이다.”

위고는 장발장을 통해 인간의 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감옥을 나온 장발장은 밀리에르 주교의 관대한 마음으로 인생이 바뀐다. 존경받는 시장으로 변신한 장발장은 자신이 모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쓴다. 그러나 어떤 노인이 범죄자 장발장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문을 접하고 장발장은 갈등에 휩싸인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갖가지 논리를 찾아낸다. 자수를 하면 자신이 돌봐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수를 하지 않는다면 단지 그 쓸모없는 노인만 피해를 입는다. 그러니 자수를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장발장은 힘들게 얻은 새로운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다시 감옥이라는 어두운 세계로 돌아갈 위기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재판소에서 죄 없는 노인이 중형을 받으려는 모습을 지켜보던 장발장은 앞으로 나섰고 자신이 장발장임을 당당히 밝힌다. 자신을 지키려던 수많은 유혹들을 뿌리치고 세상이 쉽게 외면하는 양심의 승리를 택한 것이다. 그는 다시 감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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