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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낭만과 불안사이
  • 김한글 기자
  • 승인 2016.05.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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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새로움을 잃은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의 유일한 취미는 조용한 방에서 혼자 두는 체스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언제나 어김없이 출근길에 오르는 그의 평범한 삶에서 투신을 시도하는 붉은 코트를 입은 여자를 만난 사건은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입고 있던 코트와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 한권, 15분 후 떠나게 되는 리스본행 기차표만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는 무엇에 홀린 듯이 그동안의 일상을 버리고 리스본행 열차에 오른다.

투신하려던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녀가 남긴 책을 읽기 시작한 그는 책의 주인공인 아마데우의 삶에 매료돼 그것을 역추적해 간다. 아마데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 그와 동시에 포르투갈 살라자르 독재정권에 맞서 혁명을 준비하던 저항군이었다. 또한 작가를 꿈꿨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신념으로 의사가 된 사람이기도 했다.

그레고리우스는 평범하기만 하던 자신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아마데우의 발자취를 좇으며 그의 삶을 투사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또 다른 아마데우가 되어 과거를 찾는 과정에서 그는 저항군 시절 그들이 느꼈던 우정과 사랑을 느꼈으며 우연히 들른 어느 안경점에서 만난 에스테파니아와 만나 새로운 사랑을 경험하고 과거의 사건을 공유한다. 안정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에게 우연과 인연이 얽혀 있는 새로운 상황이 찾아온 모습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관객들 역시 그가 리스본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기를 함께 바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냥 여기 머물면 안돼요?”

▲ 그가 완벽한 일탈을 놓아두고 현실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영화의 끝에서 그레고리우스는 돌연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새로운 삶과 강렬한 사랑을 경험한 그가 에스테파니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가려 하는 장면은 우리의 현실을 연상케 한다.

그레고리우스가 자신과 정반대의 이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투사했던 아마데우는 결국 이상적 존재가 아니었다. 우정에 배신당하고 사랑에 실패했으며 결국 자신이 원했던 혁명을 지켜보지 못한 일반적 존재였던 것이다. 리스본행 열차에 오르며 인생의 전환기를 경험한 그레고리우스는 철인처럼 보였던 아마데우의 그림자를 보게 되면서 결국 현실의 한계를 마주한다. 이상의 실패를 목격한 그레고리우스는 문득 현실의 실패를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삶, 능력주의의 삶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만들어냈다. 그레고리우스가 현실에서 평범함에 안주했던 것도, 이상이라 생각했던 아마데우에 자신을 투사했던 것도 그런 삶이 만들어 낸 실패에 대한 불안과 성공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대다수가 성공을 바라고 또 성공이라는 것이 행복의 일반적 가치로 생각되는 사회라면 사람은 더더욱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힘들게 된다. 인생의 성공을 말할 때는 대부분 개인의 만족보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게 되고 스스로를 불안의 고리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은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서 찾게 된 사랑과 자연스럽게 연관될 수 있다. 만약 본래의 일상을 포기한 채 리스본에 계속해서 머문다면 그의 인생은 개인의 만족과 상관없이 타인이 바라보는 정상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게 되며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 때문에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의 불확실한 조건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과 과거의 안정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란 말이나 무엇이든 원하는 말하라고 했던 알렉산드로스의 말에 “다만 해를 가리지 말아주시오”라고 답한 디오게네스의 말들이 작금에 더욱 가치를 가지는 것은 오늘날 그들과 같이 타인의 시선 혹은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그렇다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지금 모두는 불안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가? 답은 불안의 출발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능력주의는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사회의 담론을 형성했지만 모두가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구분돼는 것은 아니다. 회계사, 변호사와 같은 사회적 위치를 가진 성공한 사람들 이외에도 문학 혹은 예술,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성공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어떤 시대에서든지 사람들에게 불안이란 당대의 일반적 가치관이 존재하는 한 필연적으로 함께해야 하는 요소다. 다만 그것에 얽매여 멈추는지, 넘어서는지에 대한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레고리우스는 후에 불안의 고리를 넘어섰는가? 영화 속 그의 현실적인 고민은 현대인들이 불안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강한 여운과 함께 던져준 것 같다.

김한글 기자  petterday@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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