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10시 50분 강남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수강신청 당일이었다.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성하늘(심리·4) 학우와 장다혜(행정·3) 학우는 수강신청에 성공했다고 한다. 버스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기 때문에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려 점심을 해결하고 급하게 버스에 올랐다. 여유가 필요한 힐링 여행이라는 테마에 맞지 않는 출발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기까지 한다는 성 학우(이하 성)와 장 학우(이하 장)는 오랜만의 여행에 잔뜩 들뜬 모양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 죽녹원을 걷는 그녀들
▲ 죽녹원을 걷는 그녀들

장 : 근래 학교 앞 카페나 학교 주변에서 만나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터미널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설렘인것 같다. 괜히 처음 와보는 곳도 아닌데 두리번거리게 되고, 괜히 더 신났다.

 

성과 장이 친해진 계기는 바로 여행이었다. 성격이나 취미, 생활 패턴 등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연례행사처럼 방학 때마다 여행을 함께했다. 많은 곳들을 다녔지만 지난 14년 9월 부산여행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단다. 그러던 중 이번 학보사 여행 사업을 보고 잠시나마 사회로 나가는 문턱에서 쉬어갈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성 : 여행을 다니던 친구가 총 넷이었다. 그 중 둘은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이번에 오지 못했다. 이번 여행 테마를 힐링으로 잡은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졸업을 앞두고 있으면서 대학생활 동안 해놓은 것이 없다는 공허감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상에 발 딛기 직전 혼자 남겨진 기분 때문이다. 우리 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우들이 졸업 직전에 같은 생각을 할 것 같다.

 

▲ 그녀들은 죽녹원에서 스트레스를 잊었다.
▲ 그녀들은 죽녹원에서 스트레스를 잊었다.

3시간 30분가량 고속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길다고 생각하면 긴 시간동안 버스를 타면서도 오랜만의 여행이 주는 기대감은 성과 장을 쉽게 잠들게 하지 않았다. 가는 시간 내내 창밖을 보던 그녀들은 담양에 도착하자마자 죽녹원으로 향했다.

담양의 수많은 나무들은 겨울인 만큼 대부분 잎이 졌지만 황량하다기 보다 여유가 있어보였다고 말하고 싶다. 제 멋대로 뻗어나간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들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 중심에 푸른 대나무 숲이 있었다.

 

장 : 담양으로 떠나는데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담양이었다. 어쩌면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담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느꼈다는 거다. 겨울의 한 가운데서 푸른 숲을 만나고, 그곳을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내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죽녹원에 들어서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직 해는 떠 있는데 내리는 눈이 내린다. 아직 추운 겨울 죽녹원에서 내리는 눈은 이상하게도 따듯한 것 같았다. 길을 걸으며 그녀들의 사연을 듣기 시작했다.

 

장 : 고등학생 시절부터 공무원을 목표로 했었다. 과도 행정학과를 다니다 보니 그게 굳어졌던 것 같다. 그것만 생각하며 별다른 활동도 안하고 참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했다. 그러다 문득 공무원이란 직업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학년 말부터 뒤늦게 취업으로 방향을 정했다. 준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도 많이 무섭다. 그렇다고 취직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막상 취직한다고 해도 후회할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혼란기랄까.

 

성 : 지금은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학과들 과목을 들어봤다. 그러면서 취업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취업을 하게 되면 나한테 맞는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미래를 생각했을 때 내가 행복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러다 심리학과에서 임상심리 과목을 듣게 됐고 이것과 관련된 일은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8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집에서도 반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허락해 주셨다. 그래도 아직은 무섭다.

 

죽녹원 내에는 8가지 테마를 가진 길들이 있다.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사색의 길 ▲성인산 오름길 ▲샛길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 길 ▲추억의 샛길이 바로 그것이다. 각 길들을 걸으면 이름에 담긴 말처럼 좋은 일들이 생긴다고 한다. 실제로 그 길을 걷는다고 해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담양 대나무 숲 한 가운데를 걷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 이유에 대해 장은 피톤치드 때문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그게 정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여행을 함께한 성과 장 그리고 본 기자 모두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죽녹원을 나와 곧바로 관방제림으로 향했다. 이는 관방천이라는 강을 따라 있는 제방의 풍치림을 뜻한다. 2km 가량 연결돼 있으며 그 끝은 곧바로 메타세콰이어 길로 통한다. 담양의 여행은 별다른 교통수단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그래서 성과 장이 담양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길을 걸으며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지금처럼 방황하고 힘든 시기에 둘은 서로 어떤 도움이 돼줬을까.

 

▲ 한옥 숙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 한옥 숙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성 : 서로 힘들어도 스트레스 받는 얘기를 잘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같이 힘들어지는 일인 것 같다.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 만날 때는 힘든 얘기를 하기 보다 그런 것들을 잊기 위해 즐겁고 신나는 얘기들을 주로 하는 것 같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이 될 수 있게.

 

장 : 맞다. 그게 제일 큰 도움이었다. 덧붙이자면 서로 힘든 얘기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굳이 꺼내지 않는단 얘기다. 힘든 일도 한숨쉬어가며 얘기하는 것 보다 장난처럼 뱉어내고 함께 우울해지지 않도록 즐거운 얘기로 돌려 말하는 것 같다. 둘이 만나서 한숨만 같이 쉬어서 뭐하겠나.

 

같은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사회로 나가는 문턱에서 같은 고민을 하기 때문에 우울해하기 보다 활력이 되려 했다. 관방제림에 나무들은 겨울중인 지금 가지만 남아 있었다. ▲느티나무 ▲벚나무 ▲푸조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이 추운 겨울에도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이 꼭 서로 기대 의지하는 것만 같다. 그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는 성과 장의 모습이 어딘가 닮아 있는 듯하다. 관방제림부터 메타세콰이어 길까지 한참을 걸었다. 힐링이 필요하다는 그녀들에게 이번 여행이 그것을 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 메타세콰이어 길을 걷는 성과 장
▲ 메타세콰이어 길을 걷는 성과 장

성 :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가만히 있거나, 앉아서 풍경을 보면서 쉬고 싶었다. 혹은 여유롭게 걸어 다니고 싶기도 했다. 이번 여행 일정도 그런 면에서 여유있게 계획했다. 마음이 편하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장 : 사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 생각이 정리됐다거나 하는 것은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 것은 확실하다. 생각 이상으로 담양이 마음에 든다. 학고 주변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보고 걷다보니 뭔가 달라진 기분이다. 고민들이 생각나지 않았다고 할까. 참, 잘 먹는 것도 힐링이다. 저녁 먹으러 가자.

 

담양에서 돼지갈비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 저녁을 해결했다. 다들 배가 고플 시간이 돼서 그런지 말도 없이 입과 손만 분주했다. 오늘 하루가 여유로 가득했다면 저녁 시간만큼은 예외였다.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서 다시 여유롭게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여유있게, 늦은 시간까지 뒷풀이가 있었다.

▲ 한옥 숙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 한옥 숙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은 조선시대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불리는 소쇄원과 전통찻집 명가은을 들렀다. 두 장소의 거리가 꽤나 차이가 있어 소쇄원을 방문한 뒤에 명가은까지 걷고 또 걸었다. 담양 시골 한 가운데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을 걸으며 한적함과 맑은 공기를 느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 이상의 어떤 것을 가져다 준 것 같다. 담양의 겨울은 비어 있는 듯 가득 차있고 여유가 있었다.

완전한 여름. 가득 차있는 담양보다 지금 잎사귀가 떨어지고 어딘가 비어있는 이곳이 아마 그녀들이 마음을 비우고 걷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걸어 명가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인자한 모습의 사장님이 추천한 황차를 주문하고 담양에서의 마지막 얘기를 시작했다.

 

▲ 명가은의 따듯함은 그녀들의 마음까지 녹였다.
▲ 명가은의 따듯함은 그녀들의 마음까지 녹였다.

장 : 많은 대학생들이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면 지금 친구들과 이런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대의 반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 여행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 무섭고 불안하기도 하다.

 

성 : 우리 둘은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공무원▲대학원 ▲취업 ▲학점 등 많은 것들 때문에 대학생활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시간은 있었으나 뒤처지는 것 같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20대에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아직도 여전하다. 내가 지금 선택하려 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이 때,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필요한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내겐 큰 의미를 줬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힐링을 하는 시간이었냐고? 모른다. 다만 힘든 시간들 중 나를 준비하는, 그리고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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