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 덕적도로

 
 

전날 불참 소식을 알린 성기원씨를 제외한 나머지 26살 기계공학과 4학년 3명은 1월 30일 토요일 인천터미널 행 버스를 타러 아주대병원 정류장에서 모였다. 전날 사전 미팅 때 만났던 김봉갑씨와 김상헌씨는 취재를 위해 이틀간 달라붙게 될 날 반갑게 맞이해 줬고 초면인 이치원씨에게도 내 소개를 해줬다. “취업 걱정에 시달리는데 시작부터 기원이형이 취업 면접 때문에 여행을 빠지게 되네” 그들의 고민인 취업으로 시작해서 취업으로 끝날 지도 모르는 덕적도행 이야기 여행은 그렇게 허탈한 웃음으로 시작되었다.

두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도착한 한산한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우리는 예정대로 덕적도행 배의 표를 구매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배가 출항하지 않는 탓에 김상헌씨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인천 터미널에서라도 머리를 돌려 가평을 가자는 플랜 비를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이제는 모두가 꼼짝없이 덕적도행 배에 올라타게 되었다.

기적소리 대신 엔진 떨리는 소리가 시끄러운 배에 올라타고 나서 우리는 덕적도 행 여행에 대해 행여나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라는 고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여행안 발의자 김봉갑씨는 전국의 3327개의 섬을 다 가보겠다는 버킷리스트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덕적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섬들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제가 사는 곳이 촌이다 보니까 그런 곳이 좋아요. 자연과 하나 되는 곳이 내륙에는 그런 곳이 없잖아요. 아 또 다른 제 버킷리스트중에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정상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있어요. 섬이나 산, 바다 그런 곳을 많이 가는 것이 제 소원이어서” 출발 전 까지는 다들 들뜬 마음 보다는 어두운 얼굴을 보였었는데 배가 출발하고 나니 조금씩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다.

김봉갑(이하 봉):오늘 오지 못한 기원이 형을 포함해서 우연히 모르던 사람들 4명이 두 다리 건너 한 데 모이게 되었어요. 4학년이 수강하는 종합설계라는 과목 때문에 모였는데 한 학기짜리 조별과제인 과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저희는 가정용 튀김기를 만들었어요.

김상헌(이하 상):그 이후에 학교에서 창업캠프에 참가하라고 했어요. 발표 대회인 줄 알고 참여했는데 막상 가보니 창업캠프였어요. 그래서 별로 의욕도 없는 상태에서 가서 평가를 받았죠. 다른 사람들은 되게 평가가 좋지 않았는데 유독 저희 조에게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칭찬을 많이 했어요. 허파에 바람이 가득 든 채로 다른 대회에도 나가보자고 우리끼리 의기투합을 했어요. 아, 그 때부터 우리가 다시 뭉치게 되었나보다.

 

 
 

* 유예는 필수, 인턴도 금턴

김봉갑씨는 작년 7월부터 9월까지 인턴을 하여 한 학기 휴학해서 다음 학기가 막학기였고 김상헌씨와 이치원씨는 취업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졸업 유예인 상태였다. 인턴도 취업하는 거 아니냐는 몰상식한 기자의 질문에 대기업이 아니라면 인턴에서 직원으로 전환도 해주지 않는다는 말을 건넸다.

Q 취업준비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나요?

봉:공채는 졸업예정자나 기졸업자만 지원하니까 그 때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하게 되겠죠. 4학년 2학기부터? 취업이 잘 안되다 보니 졸업유예를 많이 하는 편이죠.

상:서류전형에 몇 십 개를 썼는데 전부 다 떨어지다 보니 ‘나를 받아줄 회사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한군데도 안받아주나’ 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게 되고 내가 여태까지 다 떨어졌는데 졸업 유예를 한다고 해서 뭐 바뀔게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다른 팀원들도 많이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허탈감도 많이 들었을 거 같아요. 다들 폐인처럼…….

이치원(이하 치):다른 학생들은 사기업을 많이 쓰니까 자소서를 많이 쓰는데 제가 가고 싶어 하는 공기업은 회사가 많진 않아요. 저는 공기업을 많이 지원하는데 공기업은 자소서를 많이 보지는 않고 전공시험과 NCS라는 시험이 굉장히 중요해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준비했는데 통과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2월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다시 시작하려니까 또 막막하더라고요.

겨울날의 매서운 바람 덕분에 덕적도의 미 보다는 우리는 생존을 먼저 강구하게 되었다. 우리를 픽업 하러 차를 몰고 오신 숙소 주인의 봉고차를 타고 덕적도의 섬 주변을 따라서 숙소까지 이동했다.

섬에서 유일하다는 편의점에 들르기 위해 15분 정도를 걸어가 저녁 식사 거리를 사왔고 해가 완전히 져 더 어두컴컴해지기 전에 근처에 있던 서포리 해변에 다녀왔다. 들뜬 마음이 경치라 지금이 아름답다는 그들의 말과 태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뤘다.

우리는 숙소에 다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장만해온 고기나 채소 등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돈이 들던 매정한 곳에서 숯 좀 아껴보겠다고 가스로 불을 피우다가 부탄가스 통을 불덩이에 떨어트려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저녁식사를 마쳤다.

 

* 이상을 안주삼아 현실과 대작하다

봉:군대를 다녀와 복학하고 나서 2학년 때는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지 별의 별 일들을 겪고 나니 뭐라도 다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죠. 그렇게 1년을 보내고 3학년 때는 아무래도 전공에 가장 치일 때다 보니 공부를 계속 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어요. 뭐 딱히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시간이 흐르다보니 주눅이 든 거죠. 세상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긴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슈퍼맨이 주저앉은 거죠.

 
 

Q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26살의 고민들을 들려 달라 부탁해도 될까요?

봉:이 취업이라는 관문을 남들이 다 해서 나도 따라 가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취업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상:휴학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졸업 예정자가 되고 나니 고민이 드는 것이 취업시장에는 빨리 뛰어들었지만 취업이 꼭 우리의 끝인가 싶네요. 다른 것을 하기에는 지금까지 낸 비싼 등록금이 아깝고 기계공학과를 나왔으면 취업을 하는 것이 정도라 생각을 하는데도 지금 와서 다른 길을 가기에는 돌이킬 수 없이 너무 많이 온 것 같은 거죠. 학교만 다닌다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못한 것도 문제죠. 지금은 흐리멍덩해진 것 같아요. 끝에 다와서 이제야 옆길이 보이니 혼란스러워요. 남들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알면 잠깐이라도……. 발악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말이죠.

Q 학교가 취업사관학교가 아닌 경험의 장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휴학하고 여러 활동들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치:자기 전공에 맞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면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이유 없이 쉬고 싶다 이런 것 보다는 과 전공에 관련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물론 저는 현실적으로 취업만 보고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래도 현실 속에서 자그마한 이상을 찾는 것이죠.

봉:음……. 적어도 갈등 하고 있다면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하게 될 테니 일단 해봐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아닐 때.

Q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봉:학교에서 제공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많이 참여해봤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경험과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인연. 어차피 다 등록금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치:제가 못해봐서 그랬는데 능동적으로 리드할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해봤으면 싶어요. 남들 앞에 설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이 있었으면 리더십과 대인관계가 좋아질 수 있겠죠.

상:충동적인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대인관계 상에서나 개인적으로도 좋지 않은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에 충동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순탄히 대학생활을 끝내기 위해서 랄까요.

치: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물론 저는 지금도 못 고쳤습니다.

상:대외 활동은 반드시 하나는 했으면 좋겠네요. 느끼는 것이 분명 많아질 거고 시야도 넓어질 겁니다. 학생으로만 시간을 보낸다면 느끼지 못할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봉:연애도 많이 해보세요.

상:아무리 친하더라도 금전적 관계는 확실하게 할 것?

 

* 다시 현실로

속 깊은 이야기가 달과 함께 지고 날이 밝자 우리는 남은 버너를 총 동원하여 냄비에 물을 올렸다. 아침을 먹고 나서 어제 우리를 픽업해주셨던 차에 다시 탑승하여 간략하게 덕적도 투어를 다녔다. 전날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너무 멀었던 서포리 해수욕장의 끝자락도 차를 타고 이동하니 구경하기에 훨씬 수월했고 우거진 소나무가 절경을 뽐냈던 밭지름 해수욕장의 장관에도 감탄하였다. 걸어서 이동할까 고민했던 3시간 거리의 능동자갈마당도 금방 도착하여 낙타바위를 구경했으며 아찔한 공사현장에 부둣가에서 내려 원양어선에 팔려가나 걱정했던 소지해변 근처 북리등대에서도 방파제와 넓은 바다를 구경하며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야기 하다 보니 4학년이라 막판 스퍼트를 내야할 시기인데 5년간 쉬지 못하고 달려와 지쳐버린 제가 보이네요.”

“본인이 그려가야 길 인 것 같아요. 아무리 방향이 잘 잡혀있더라도 본인이 길을 흐릿하게 그려간다면 제대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모두 미동도 없이 잠을 잤다. 잠에서 깨고 현실로 돌아가면 그들은 또 달리고 있을 것이다. 달려야 한다는 생각도 전에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덕적도에서 쉬다 돌아갔다.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이제야 잠시 쉬었다 갔다. 속세를 떠나 자연과 어우러졌던 덕적도에서 서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봉, 상, 치 그들의 미래는 그랬기 때문에 더 밝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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