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국회 필리버스터가 재가동 됐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의원 구속 동의안 통과 저지를 위해 진행한 이후 43년 만이다. 과거 필리버스터가 초법적인 국가의 권한 때문이었다면 이번 필리버스터는 초법적 국가 권한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차이라고 하겠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굉장했다. 한국 갤럽이 지난 2~3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 탄도로켓을 시험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지지도가 4%가량 상승했다. 또한 테러방지법 정보수집 권한에 대해 찬성 39%, 반대 51%로 다수가 반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가올 총선 선거구 획정안 처리에 쫓겨 급하게 종료한 필리버스터 이후 여당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고 80여개 법안을 일괄 처리했다. 다수의 국민이 지지했던 필리버스터와 테러방지법 반대는 총선이라는 또 다른 이슈에 밀려 잊혀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번 법률 통과를 기점으로 정부가 판단하는 유사시에 국정원은 대테러 센터를 두고 정부부처나 행정관청을 총괄하게 됐다. 테러방지법 통과로 국정원은 사실상 영장 없이 국민의 개인정보, 위치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실상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국정원의 직접 보고를 받는 대통령의 권한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난 해 11월 있었던 1차 민중총궐기에 일부 복면 시위를 한 국민들을 박 대통령은 IS에 비유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의사표현을 하는 국민을 테러단체와 비교하는 모습을 보면 테러방지법이 말하는 ‘테러활동 의심자’가 일반적 국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도입 논의가 이뤄지던 테러방지법은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어 입법이 무산된 바 있다. 이미 16년 전 진행된 인권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역행하는 것은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테러방지법은 테러방지를 위한 법안이 아니라 정부 권한 강화를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여당과 정부가 귀를 막은 채 원하는 바를 위해 나가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총선이 더 가까워지면 여당은 ▲경제 ▲민생 ▲안보를 살리겠다며 다시금 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민의 목소리를 저버린 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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