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대학교육을 묘한 방식으로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하나는 ‘창의적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비판적 사고’다. 창의적 사고는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교육지원사업’의 조건으로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보니 ‘창업이나 취업에 관련해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능력’이라는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비판적 사고는 ‘학문적 전통 속에 뿌리를 둔’ 개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배우지 않고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주변에서 그 ‘비판’을 나름의 생각만으로 오·남용하다가 생각보다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비판적 사고에서 말하는 비판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가장 흔히 하는 오해나 실수는 ‘어떤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적이라 여기는 것’이다. 물론 비판은 확실히 ‘긍정’보다는 ‘부정’ 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부정의 요소가 없는 비판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위 ‘네거티브’라고 부르는 것과 정당하고 정상적인 ‘비판’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렇다. 네거티브는 그 목적 자체가 처음부터 부정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반면에 비판은 철저한 논리적 검증의 결과로서 부정에 이르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목적이 부정이냐 결과가 부정이냐’하는 것이 꼴사나운 네거티브와 정당한 비판을 가르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학문적 차원의 비판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소 거친 방식의 정의가 효과적일 것 같다. 비판이란 겉보기에는 그럴 듯한 것들을 이면으로 파고 들어가 그 안에 숨겨진 오류나 왜곡을 찾아 드러내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 정의가 적용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정신분석학’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가가 하는 일은 주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으로부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숨어 있는 어떤 것이 문제가 될 경우 정신분석가는 그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함으로써 모든 것을 정상적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자체로 병폐 덩어리와 다를 게 없다. 더구나 그것들 중 일부는 하도 교묘한 방식으로 왜곡 혹은 정당화되고 있어 어지간해서는 제대로 한번 따지고 맞붙어 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쯤 되면 정의롭고 영리한 우리 학생들은 슬슬 어떤 의욕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정신분석학과 비슷한 방식을 적용해서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그 이면의 추악한 모습들을 시원스럽게 폭로할 수만 있다면...”

이런 의도는 대단히 좋지만 학문적 엄밀성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개인과 사회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사회적 병폐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 누가 과연 사회를 대상으로 정신분석가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사회적 병폐에 도전하는 비판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특정한 한계 안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 한계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비록 학문적 엄밀성을 등에 업고 그 한계를 완전히 뛰어 넘기는 어렵겠지만 이론적 한계가 지배하는 영역을 계속해서 좁혀나갈 수는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더 치밀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더 교묘하게 불의를 정당화하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정교한 잣대와 예리한 칼날을 개발해 그것들을 거침없이 파헤쳐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 다름 아닌 창의적 능력인 창의성이다.

지금 다루고 있는 비판 개념에 일상적 차원의 창의성 개념을 더해서 ‘창의적 비판’이라는 개념을 구상해 보기로 하자. 그러면 그것이 하게 될 역할은 아마도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새롭고 남다른 시각을 체계화해 그것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왜곡되고 교묘하게 정당화된 것들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러한 창의적 비판의 능력을 키워나가기만 한다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혼란해질수록 우리는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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