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전문가’라는 거창하고 거추장스러운 호칭 탓은 아니더라도 내진설계를 전공하였다고 하면 으레 “우리나라에도 지진이 발생할까요”, “발생한다면 언제일지 알 수 있나요”, “이 건물은 안전할까요”, “이 건물은 진도 몇까지 견딜 수 있나요” 등의 질문을 받는다. 묘하게도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하는 이들 질문의 대부분은 명쾌하게 답해줄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어떤 지역에 언제 얼마나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지에 대하여는 모른다고 답하는 게 옳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과거 발생하였던 여러 지진의 통계적 경험을 통하여 추측하는 것뿐이다. 이 추측도 인류가 지반의 진동을 과학적으로 관측한 역사가 백여 년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통계를 들먹이며 회귀주기가 수백에서 수천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지진의 발생을 예측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신뢰도의 문제로 귀착된다.

그렇다면 내진설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건물을 포함한 구조물을 지진의 진동으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다. ‘내진설계철학’은 내진설계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산에 오르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 중 어떤 경로를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등산을 할 때 ▲급하고 험준한 경로를 선택하여 산악인으로서의 성취감을 최고도로 맛볼 것인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완만한 경로를 택하여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의 정취를 흠뻑 맛보며 오를 것인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최단거리 경로를 택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 대부분의 설계 실무에서 사용하는 설계기준에 따르면 일정 규모이하의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건물에서는 지진의 복잡한 동역학적 특성에 따른 영향을 등가의 정역학적 영향으로 치환하여 간단하게 설계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때 사용되는 지진은 5백년∼2천5백년 회귀주기를 가정하여 그 세기를 상정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가정하였던 것보다 더 큰 세기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등가정적해석이 허용되는 규모를 초과하거나 복잡한 형태의 건물은 동역학적해석을 적용하여야 한다. 지진의 영향을 ‘강함’의 측면에서 고려하는 이들과는 달리 지진의 진동이 내포하고 있는 에너지를 고려하는 접근법도 있다. 이는 건물 자체의 손상을 통해 지진에너지를 소산시키는 방법이다. 또한 면진베어링이나 댐퍼, 미끄럼 마찰면 등의 기구를 사용하여 지진에너지를 소산시켜 건물로 유입되는 지진에너지의 양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이들 에너지 소산기구의 장점이라면 지진의 불확실성에 따른 영향 및 건물의 손상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비행기나 기계의 진동을 제어하는 방법을 준용한 것으로 유압잭과 텐던 또는 제트엔진 등을 설치해 지진에 의한 진동 영향을 상쇄시키는 방향으로 건물이 변형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있다. 이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것과 동시에 세기와 방향이 매우 빠르게 변하는 지진의 진동을 제어할 정도의 속도로 기기를 조종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과제가 남겨지는 방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이치와 마찬가지로 이들 여러 방법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어느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답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것이 최선의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주관적인 답은 존재하겠지만 누구나 수긍하는 객관적인 답이 존재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내진설계 방법은 설계자의 신념과 그에 대한 건축주의 호불호 그리고 효과·비용 분석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