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델마와 루이스' 중에서
▲ 영화 '델마와 루이스' 중에서

 

 델마는 90년대 미국의 한 가정주부다. 그의 남편 데릴은 외박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델마는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가벼운 외출을 하는 것도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집을 떠나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델마의 단짝 친구인 루이스는 옛날 텍사스에서 성폭력을 당한 트라우마가 남아있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여성이다.

어느날 루이스는 델마에게 둘만의 여행을 제안하고 남편 몰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처음 겪어보는 남편에 대한 해방감과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한 들뜸으로 행복해한다. 루이스가 운전하는 56년형 포드와 그 위에서 피는 담배, 별장까지 가는 길의 풍경, 잠시 들린 술집 ‘실버불렛’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시간까지 남편으로부터 억압받지 않는 시간의 모든 것이 완벽했다. 술집에서 만난 매너남 할렌이 갑자기 치한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델마의 어지럽다는 말에 할렌과 델마는 산책을 나온다. 단 둘만 남게 되자 폭력을 행사하면서 강간시도를 하는 남성에게 델마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울면서 “그만해, 나는 유부녀에요”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뿐이었다. 그가 “괜찮아, 나도 유부남이야”라고 말한 뒤 계속되어지는 행동과 성적 모욕은 가히 충격적이다. 루이스는 강간당하는 델마를 뒤늦게 발견하고 이를 막는 과정에서 남자는 루이스가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는 자수하지 않고 경찰로부터 도주해 멕시코 국경을 넘을 것을 계획하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것은 범죄라기보다는 가벼운 일탈로 보여지며 심지어 이들의 상황에 관객들은 해방감을 함께 느낀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제작할 당시 한 제작자는 “두 계집이 차 안에 있는 얘기라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는 영화가 만들어진 93년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남성들역시 대부분 평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남성 우월적 시각을 강하게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사기꾼이나 성희롱을 즐기는 무뢰한들의 모습을 일반적 남성상에 투사하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는 당시 사회 구조가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얻었고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 면에서 ‘델마와 루이스’를 얘기할 때 페미니즘을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즘 운동은 1840년대 초기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의 투표권 보장을 위해 시작된 이래 고용 및 공적 영역에서 기회 균등의 권리를 확립하고 여성 억압에 대한 원인과 구조 분석을 통해 여성 문제를 극복하는데 앞장섰다. 특히나 이 영화는 가부장적 구조에 속한 여성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남성들의 일방적 폭력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율성 확보와 그를 열망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선 여러 분화된 페미니즘 중 ‘급진적 페미니즘’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볼 수 있다. 성폭행을 당한 아픔이 있는 루이스와 유사한 경험을 겪게 되는 델마를 통해 자칫 음지로 숨어들 수 있는 성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깊게 뿌리내린 남성 중심의 문화를 파헤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의문을 제기한다. 개봉 직후 이 영화에 대해 많은 남성들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는 논란을 제기했지만 적어도 당연시 되고 묵인되어 왔던 여성 문제들을 영화를 통해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는 것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공론화를 통한 역할이 인정되었다고 한다고 해도 오늘날까지 93년도 델마와 루이스가 필요할까. 물론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을 하나로 결집시키면서 여성의 권리를 찾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여성 억압에 대한 모습을 남성과 여성의 대립만으로 지나치게 단순화 하면서 여성 억압 구조와 맞물려 있는 역사적, 사회적 조건들을 무시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여성 혹은 소수자들의 권리는 단순히 이분법적 논리와 투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왜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이해되어 왔는가’를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찾을 수 있다.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얘기한 것처럼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선행해야 할 일은 여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기보다 여성에 대한 보편적 사회인식이 왜 형성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보여지는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행태는 과거 급진적 페미니즘의 형태보다 더 극단적으로 보여진다. 남성 중심의 여성 억압적 사회구조 변화를 말하는 ‘메갈리아’가 주장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녀들이 조장하는 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급진적 페미니즘은 한계를 인식하고 변화했으며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델마와 루이스는 이미 93년에 그 역할을 다하고 떠났다. 페미니즘의 흐름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것처럼 2015년 델마와 루이스의 오마주 또한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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