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29일까지 ▲간다연(국문·2) ▲김여원(국문·2) ▲이연수(국문·2) ▲임주영(국문·2) 학우들(이하 우리들)은 여수·순천을 다녀왔다.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두 지역이라 모든 여행계획을 야외로 계획했다. 또한 아주대학보에서 기획한 ‘떠나라 여행’을 통해 경비를 지원 받아 자금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예쁜 경관으로 유명하다는 소문과 많이 가보지 못했던 전남지역의 설렘을 안고 여수행 버스를 탔다. 그러나 이게 웬걸 여수에 도착하니 비가 오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이번 여행은 망했구나”싶었다. 비가 오니 따듯할 줄 알았던 전남의 날씨도 쌀쌀했다. 구름 낀 날씨로 인해 사진에서 봤던 그 아름다운 경관도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 끝까지 가야지. 우리들은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오동도를 향해 갔다.

 

꼭지1.집 나가면 고생, 비오면 더 고생!

이슬비 내리던 날씨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비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 그런 날씨에 우리들은 오동도 입구에 도착했다. 비가 내려도 겨울바다의 운치는 가려질 수 없었다. 겨울바다 바람과 함께 잔잔한 파도는 우리를 환영했다. 여수에서 오동도로 가는 길을 건너면서 많은 추억 사진들을 찍다보니 어느새 빗발은 더 강해져 있었다. 그래도 오동도에 가기로 했으니 절반의 모습이라도 봐야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빗속을 거닐었다. 그렇게 삼십분쯤을 걸었을까. 우리들은 오동도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보였던 오동도의 상징과도 같은 음악분수는 야속하게도 ‘비가 올 때는 작동하지 않습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음악분수를 지나 우리들은 오동도를 구경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조금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을까 그때 해돋이 갯바위가 눈에 보였다. 아름다운 광경에 우리들 모두 눈을 떼지 못했다. 계단의 양옆에서 흔들리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바닷가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 마다 펼쳐지는 광경들은 모두의 눈을 매혹시키기 충분했다.

 
 

오동도를 돌아본 뒤 우리들은 게장백반을 먹으러 갔다. 게장백반을 먹으러 식당에 도착하니 오동도를 돌면서 쌓여온 추위와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입에서는 “힘들다”는 말이 돌림노래처럼 나왔다. 자꾸 십분만 더 있다가자는 말을 자연스레 하게 됐고 먼저 일어나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볼 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모두들 몸을 추스르고 ‘하멜등대’로 향하기로 했다.

하멜등대로 가는 길은 더 험했다. 물론 가는 길이 험했던 건 아니지만 비가 끊임없이 내렸고 빗발을 더 쌔져 우비를 뚫고 우리들의 옷까지 점점 젖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수는 걸어서 다니기 좋은 여행지여서 30분도 걸리지 않아 하멜등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도 보일정도로 강렬한 빨간색으로 칠해진 하멜등대의 옆에는 하멜전시관이 보였다. 비는 점점 강해져 바닥에 튀는 빗방울은 우리의 신발 속으로 들어와 양말을 젖히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강렬한 등대의 인상 앞에 찍는 사진은 무조건 잘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축축해져가는 양말을 견디면서 등대 앞에서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난 뒤 우리들은 들이치는 비를 피해야만 했다. 더 이상 밖에 있다간 우리들 모두 다음날 순천이 아니라 여수 병원으로 갈 것 같았다. 자산공원을 가기에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공원에 볼 게 얼마 없을 것 같아 일정을 수정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갔다. 자산공원을 가는 것 보다 다른 장소를 찾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멜등대와 가까운 실내를 찾으려 했으나 여수는 실내관광지가 많지 않았다. 결국 실외에서 가까운 곳인 ‘이순신 광장’을 가기로 했다. 이순신 광장은 걸어서 십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고 거북선 실물 모형도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비도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고 거북선 내부는 실내이기 때문에 비도 피할 수 있었다. 이순신 광장에 도착해 거북선 내부로 들어온 우리들은 배 안을 구경했다. 그곳에는 수군들의 다양한 모습들과 배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모형으로 전시해뒀는데 그 안에는 장군복을 입을 수 있게 했다. 그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재현해둬서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거북선에서 나와 쏟아지는 비를 뚫고 이순신 광장에서 돌산공원 케이블카로 향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 데 운영할까”, “만약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말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오갔지만 그래도 예약한 케이블카는 타고 싶었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예쁘다는 말이 있기에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다행히 케이블카는 계속 운행했지만 바람에 조금씩 케이블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케이블카가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위에서 바라보는 여수의 조명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불빛이 더 잘 보였을 거란 아쉬움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긴 케이블카의 길이와 비바람에 흔들리는 케이블카의 스릴이 그 아쉬움을 채워주기도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우리들은 여수의 명물 ‘여수삼합’을 먹으러 교동시장으로 갔다. 묵은지와 수육, 홍어로 이뤄진 홍어삼합과 달리 여수삼합은 묵은지와 삼겹살, 해산물로 이뤄져 있는 음식인데 호불호가 갈리는 홍어삼합과 달리 여수삼합은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다고 한다. 비 오는 날 걸어 다녀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여수삼합이 정말로 맛있어서 그랬을까 털털하게 우리를 대해줬던 주인아주머니의 따듯함과 함께 여수삼합은 우리에게 ‘꼭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숙소에 돌아와 우리들은 여독도 풀고 여행에 대한 얘기도 할 겸 간단하게 술 한 잔하고 인심 좋은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함께 얘기도 나누면서 내일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됐다.

 

꼭지2. 일정이 틀어지면 어떠냐. 맛있는 것만 먹으면 되지!

우리들은 여수를 떠나 순천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제발 오늘만은 비가 안 오길”, “기상청이 제발 틀리길”하고 기도하면서 말이다. 우리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수와 같은, 여수와 다를 바 없는 날씨였다. 순천에는 여수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그 날씨였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 가운데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우리들은 ‘순천 드라마 촬영장’으로 향했다.

드라마 촬영장은 6~70년대 우리나라 모습을 재현한 세트장으로서 여러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많이 쓰였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 세트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박보영·이종석 주연의 영화 ‘피끓는 청춘’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옛날에 있었던 ▲고고장 ▲선술집 ▲정육점 등의 세트장을 재현했다. 또한 옛날 교복들을 빌려 입을 수 있는 장소도 마련돼 다양한 추억을 남길 수 있게 해뒀다. 아쉽게도 이날은 비가 오는 날이라 교복을 입고 학교 세트장 말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었지만 옛날 교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7·80년대와 응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 장소인 순천만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순천만까지 버스로 가는데 만 40분.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어서 전부 야외인 순천만을 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들끼리 고민을 했고 결국 순천만은 포기하고 곱창 골목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순천 중앙시장에 도착해 곱창골목을 들어가기 전 우리들이 다음날 가기로 했던 빵집 ‘화월당’이 그 앞에 있었다. 우리는 미리 사두기로 하고 화월당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예약하지 않으면 카스테라를 살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밀려있었던 것이다. 전화위복이랄까 순천만을 들렀다면 화월당에서 파는 볼카스테라 빵을 먹을 수 없을 뻔 했는데 다행이었다. 우리들은 다음날 볼카스테라를 찾아가기로 예약하고 곱창골목으로 들어가 곱창전골을 먹기로 했다. 순천의 민심과 따듯한 곱창전골은 우리의 마음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충분한 맛이었다. 여행의 반은 먹거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곱창전골을 너무 많이 먹은 우리들은 야시장을 포기하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갔다. 여수와 달리 순천은 걸어 다니면서 일정을 채우기가 만만한 곳이 아님을 느꼈다. 다음에 올 때는 자동차를 빌려서라도 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천만의 전경은 나중에 와서 보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순천에서의 하루도 마무리 됐다.

다음날이 되니까 뭔가 싫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들이 여행 다닐 때는 그렇게도 우중충하고 비 오던 하늘이 수원으로 올라가려니까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게 아닌가. 비오는 날 걸었던 순천과 맑은 날씨의 순천은 너무나도 달랐다. 억울한 마음에 예약한 버스표고 뭐고 전날 가지 못했던 순천만을 향해 달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제 집도 그립고 쉬고 싶은 마음도 생겨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화월당에 들러 예약한 빵을 구매하고 수원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야속하게도 시외버스 창문에 보이는 순천은 햇살과 함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과 함께 사서 한다는 젊어서 고생에 대한 약간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꼭지3. 고생했기에 추억으로 남은 여행

이상한 일이다. 여행에서 일정이 틀어지거나 날씨가 안 좋아서 힘들면 2인 이상의 여행에선 분명 문제가 생기고 다투게 된다. 둘 중 하나만 발생해도 여행하기 싫었을 것이다. 근데 날씨가 안 좋아서 일정의 반 밖에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거기에 다 젖은 신발과 축축한 우비라니...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그 누구도 불평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재밌으니까 불평할 이유를 찾질 못한 것이다. 이상할 만큼 즐거운 기분이었다. 계획이 틀어지면 다른 방향을 찾았다. 힘들고 추우면 잠시 일정을 멈추고 쉬어가면 된다. 여행의 부족한 부분들을 수많은 대화와 함께 있으므로 해서 우리들은 여행을 즐겼다.

즐기러 온 여행이고 쉬러 온 여행인데 인상써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고 여행을 가는 동안에도 우리들은 인상 한번 쓸 이유가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잘 지켜서 그랬을 수도 있고 여행지가 좋았을 수도 있다. 따듯한 민심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면 나쁠 곳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일정이 망가졌음에도 우리들이 즐거울 수 있었던 건 우리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개인행동보단 ‘우리’로서 계속 있어왔던 것. 그렇게 했던 여행이었기에 더 즐겁게 보냈었다. 이런 여행 또 다시 해볼 수 있을까. 가능할 것이다. 우리들이 함께 갈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즐거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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