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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史記)
  • 홍성표 특임교수(NCW학과)
  • 승인 2016.03.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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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출판사 : 민음사

『史記』는 역사와 철학과 문학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이며 선현들의 지혜가 집약된 보고(寶庫)이다. 저자 사마천은 한(漢)의 국관(史官)이었다. 서기전 99년 흉노 토벌에 패하여 흉노에게 투항한 이릉장군을 두둔하다가 한(漢) 무제의 격노를 사 궁형을 받고 온갖 굴욕과 역경을 참으며 역작 『사기』를 완성하는데 온갖 열정을 다 바쳤다.

역사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 이야기를 정리한 최초의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인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열전 70권은 가장 빛나는 꽃이다. 그 중 몇 장면을 소개해보자.

중국사에서 가장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요(堯)와 순(舜) 임금은 모두 자신들의 아들이 아닌 덕망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물색하여 후계자로 세웠다. 순의 경우 장님인 부친과 계모 및 이복동생의 온갖 핍박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효성을 다하였다. 순의 사람됨을 아는 이웃들은 그가 농사를 지으면 밭두덕을 양보했고 물고기를 잡으러 가면 좋은 자리를 양보했다. 소문을 들은 요임금은 순에게 정사(政事)를 대행하게 하였고 20년 후에는 그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8년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며 순에게 제위를 넘겼다. 또한 순임금도 재위 39년만에 세상을 떠나며 덕망 높은 우(禹)에게 제위를 넘겼다. 이처럼 도를 지켰던 요순시대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춘추(春秋) 5패(覇)라 함은 춘추시대의 다섯 패자(覇者)로서 제(齊)의 환공, 진(晉) 문공, 초(楚) 장왕, 오(吳) 부차, 월(越)의 구천을 일컫는다. 이들은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제거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걸고 제후들의 지지를 얻어 패권을 장악했다. 첫 번째 패자 제의 환공은 포숙과 관중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크게 번성시켰다. 관중은 포숙과의 우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동업을 했는데 이윤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이 가졌지만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쫓겨났을 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시운을 만나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을 싸워 세 번 모두 패하여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관중이 늙어 죽게 되자 환공은 “장차 누구와 정사를 논하면 좋겠소?”하고 물으니 관중은 “역아는 자기 아들을 죽이고 폐하께 아첨한 자이고 개방은 왕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의 가족을 버렸고, 수조는 스스로 거세하여 폐하께 아부했으니 큰일을 맡길 만 한 자들이 못 됩니다”고 답하였다. 즉 인륜을 저버린 자는 쓰지 말라는 충언이었지만 환공은 이를 무시하고 이들을 중용함으로써 결국 제나라를 망치게 되었다.

전국시대는 존왕양이의 대의명분도 없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는 제후들이 생존을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한 시대였다. 오와 월의 싸움은 결국 한 쪽이 멸망하고서야 끝이 났는데 이것이 곧 전국시대의 시작이었다. 초의 오자서는 부친과 형이 평왕에게 처형당하자 초를 탈출하여 각국을 떠돌다가 오왕 합려 밑에서 손무와 함께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300대의 태형을 가하였다. 죽마고우 신포서가 과하다고 나무라자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길은 멀어 다른 방법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일화를 남겼다. 합려는 월나라 구천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죽으며 아들 부차에게 원수를 갚아줄 것을 유언하였다. 부차는 2년의 준비 끝에 회계산에서 구천을 사로잡았지만 처형하라는 오자서의 간언을 무시하고 살려주었다. 구천은 쓸개를 곁에 두고 식사 때마다 그 쓴맛을 보며 ‘회계산의 치욕을 잊지말자’고 복수를 다짐했다. 3년차에 드디어 구천은 부차를 죽이고 吳를 멸하였다. 구천을 도와 오를 멸망시킨 범여는 사직하고 제나라로 가 갑부가 되었다. 하루는 초나라에 있던 둘째 아들이 살인죄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자 범여는 막내아들에게 황금 한 마차를 내주며 형을 구해오라고 했다. 이 때 장남이 나서서 자신이 가겠다고 하고 아내가 그를 지지하자 결국 장남을 보냈는데, 장남은 황금을 쫀쫀하게 쓰다가 결국 실패하고 동생의 시체와 함께 돌아왔다. 이 때 범여는 “이리 될 줄 알았다. 장남은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까워서 돈 쓸 줄을 모른다. 반대로 막내는 부유할 때 태어나 아쉬운 것 없이 커서 큰 돈을 제 때 잘 쓴다. 막내라면 그 돈으로 둘째를 능히 구해올 수 있었겠지만 이제사 한탄한들 무엇하랴.” 전국시대는 결국 진(秦)나라가 모든 제후국들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함으로써 끝이 났다.

손무가 죽은 지 100년 후에 제나라에 손빈이 태어나 방연과 함께 동문수학했다. 방연은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손빈을 항상 시기하였다. 위나라 장군이 된 방연은 손빈을 초청하여 간첩죄를 씌우고 두 다리를 자른 후 병법서를 쓰게 했다. 미친 척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손빈은 가까스로 제로 돌아와 전기 장군의 식객이 되어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손빈은 전기장군의 군사로서 계릉전투에서 방연의 위나라 군대를 대파하였고, 13년 후에는 다시 대장군 방연을 상대로 싸우게 되었다. 마릉계곡으로 방연을 유인한 손빈은 계곡의 막바지에 큰 나무를 잘라 길목을 막고 껍질을 벗긴 후 ‘방연,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고 쓴 후 궁수를 매복시키고 자정 무렵 횃불이 오르면 그를 향해 쏘라고 지시하였다. 막바지 계곡 길목이 막힌 방연은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가 있어 횃불을 밝히는 순간 궁수들의 집중사격을 받고, “기어코 놈을 출세시켜주는구나”하며 죽었다.

전국시대 7웅은 한·위·조·연·진·초·제(韓·魏·趙·燕·秦·楚·齊)였다. 7웅들은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에 사력을 다했다. 주로 강대국 진과 초를 상대로 한 합종연횡이었다. 합종연행설의 주역인 소진과 장의 두 사람은 귀곡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한 친구였다. 소진이 먼저 조나라 재상이 되어 합종설로 제후들을 설득하여 맹약을 맺고 진에 대응하였다. 각국에 유세를 펼치던 장의는 초나라 재상집 잔치에 갔다가 도둑으로 몰려 수백대를 맞고 들것에 실려 집에 왔다. 이를 본 아내가 “당신이 글을 읽어 유세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욕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하자 장의는 “내 혀가 그대로 있소?” “있기는 있네요” “그럼 됐소”하였다. 이후 소진의 도움으로 진나라 재상이 된 장의는 갖은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합종을 깨고 연횡설로 제후들을 엮어 초에 대응하면서 진을 크게 부흥시켰다. 하지만 사마천은 소진과 장의 모두 나라를 기울게 한 위험한 인물로 평가했다.

제나라의 맹상군은 재상 전영과 첩의 아들로 5월 5일에 태어났다. 이미 40여명의 자녀를 둔 전영은 산모에게 아이를 내다 버리라고 했지만 첩은 몰래 키웠다. 아이가 성장한 뒤에야 전영에게 소개했는데, 전영은 버럭 화를 내며, “저 애를 버리라고 했더니 너는 왜 명을 어겼느냐?”고 호통쳤다. 첩은 아무 말도 못하는데, 대신 아들이 조아리며 물었다.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를 기르지 말라고 하신 까닭이 무엇인지요?” “5월 5일에 난 아이는 키가 문주방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를 죽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서 나온 것입니까? 문 높이에서 나온 것입니까?” 전영이 아무 말 없자, 아들은, “운명이 하늘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아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문주방 높이에서 왔다면 문높이를 올리면 될 것입니다. 누가 그 높이만큼 자랄 수 있겠습니까?”고 하였다. 전영은 기가 막혀 모자를 용서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가 바로 맹상군이다. 전영의 뒤를 이어 설지방 영주가 된 맹상군은 가산을 털어 천하의 식객들을 차별없이 받아들여 수천명에 이르게 되었다. 어부지리, 계명구도, 교토삼굴 외에도 수많은 고사성어들이 맹상군의 식객들에게서 나왔다.

어찌 이 뿐이겠는가. 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영웅호걸들의 숱한 처세술은 수천년을 이어 후세들에게 삶의 지혜를 깨우쳐준다. 무한경쟁의 현세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주저없이 권하고 싶은 명작품이다.

홍성표 특임교수(NCW학과)  sungpyo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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