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운데 꽹과리가 울려 퍼진다. 높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가 싫기도 하련만 듣기 썩 나쁘진 않다. 연이어 북과 장구 그리고 징이 소리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딱히 어울릴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 악기들이 모여 두서없이 소리만 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점차 어깨가 들썩이고 빠져든다. 꼭 악기가 내는 엄청난 음량이나 가락이 만들어내는 흥이 아니더라도 연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표정은 함께 ‘얼쑤’를 외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다시 꽹과리가 울리고 흥이 오른다. 잇따라 장구가 그 흥 위에서 경쾌하게 뛰놀며 분위기를 달구고 북이 그 흥을 끌고 간다. 이윽고 징이 울리며 가슴에 담겼던 응어리들이 터진다. 연주 중간의 공백마저 흥겨움으로 연주하는 풍물패 ‘녹두벌’의 모습이다. 이번 해로 29년이 되는 중앙 풍물패 녹두벌이라는 이름엔 ‘녹두장군이 벌판을 달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 의미만큼이나 그들의 공연은 시원하고 흥겹다.

흥이 절로 느껴지는 동아리 '녹두벌'
흥이 절로 느껴지는 동아리 '녹두벌'

녹두벌 동아리원들은 스스로를 ‘유대감이 특별하다’고 평가하는데 그 의미가 남다르다.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물놀이’와 서서 움직이며 보다 역동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판굿’을 주로 하는 녹두벌은 활동의 특성상 함께 땀 흘리며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구분 없이 뛰면서 연습하는 것 자체가 서로를 상당히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 후 진행되는 뒷풀이에서 함께하는 막걸리는 유대감을 더하는데 특히 많은 역할을 한다. 녹두벌의 상쇠(꽹과리의 으뜸)를 맡고 있는 이은창(소프트웨어·1) 학우는 “서로의 땀 냄새를 알 정도다”며 막역함을 드러냈다.

흔히 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표현한다.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알 기회가 없겠지만 녹두벌에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년 여름과 겨울 ‘고창 농악 전수관’ 캠프를 통해 고창의 전통 ‘판굿’ 가락을 배워온다. 지난 해 여름 폭염주의보가 있을 당시에도 녹두벌 풍물패들은 그 흥을 잊지 못해 고창을 찾았다. 산 속에서 50여명 정도가 함께 하는 판굿은 고창의 가락만을 배우는 것을 넘어서 함께 호흡하고 즐기는 하나의 생명활동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저 즐겁고 흥이 나서 몸이 가는 대로 활동하는 모습은 글로써 표현이 불가하다고 말하고 싶다. 분위기에 취하고 악기의 소리에 취하고 스스로의 몸짓에 취하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기를 다루는데 열중하다 보면 손의 피부가 벗겨지는 일이 허다하다. 동아리방에 언제나 반창고가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동아리 사람들이 그 쓰라림을 경험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악기 다루다 피 봤다”라는 말은 훈장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사물놀이에 취해있고 미쳐있다고 할까. 동아리원 대부분이 우리 학교에 입학한 뒤 녹두벌을 통해 처음으로 사물놀이를 접했다는 점에서 우리 전통 가락의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으레 짐작할 수 있겠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음력 정초에 ‘지신밟기’라는 행사를 했다. 풍물놀이를 통해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의미를 가진 이 행사는 오늘날 우리 학교에서도 이어진다. 음력 정초는 아니지만 개강 후의 연례행사로 녹두벌은 학교 내의 학생회실에서부터 시작해 교외 음식점들까지 방문한다. “아따 여기가 어디여? 어디 학생회 아니여?” 익살스러운 말들로 잡귀와 신을 위로하는 민족의 전통을 그대로 재현한다. 함께 음식을 나눠먹으며 아직 남아있는 고유의 정을 확인한다. 어느새 학교와 주변 주민들의 안녕을 비는 지신밟기는 학교의 안팎을 잇는 하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됐다.

이은창 학우는 다시 1학년이 된다고 해도 또 다시 녹두벌을 선택할 것이라 말한다. “뛰고 땀을 흘리는데 오히려 몸이 홀가분해진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아마 느낄 수 없을 거다. 한번 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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