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2.10 월 13:07
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로 보는 세상
19세기의 언어 ‘민족’을 13세기에 녹이다 <브레이브 하트>
  • 김정수 기자
  • 승인 2015.09.25 00:10
  • 댓글 0

-영화 <브레이브 하트>: 멜 깁슨, 소피 마르소 주연
-도서관 소장번호: DD 791.430973 G451브

1304년 스코틀랜드의 영웅은 잉글랜드의 처형대로 끌려갔다. 이유는 반역이었다. 그에게 잉글랜드 재판관은 “자비를 베풀어 달라하면 살려주겠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처형대 앞에 모인 잉글랜드인들 또한 ‘자비’를 연호한다. 그의 입에서 자비를 원한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바로…….

위의 장면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 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최우수 작품상을 받는 쾌거를 이룩한다. 이 뿐이 아니다. <브레이브 하트>는 2014년에 이뤄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붐이 일어났을 때도 큰 영향력을 미쳤었다.

이 영화는 잉글랜드인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영웅 윌리엄 월레스(이하 윌리엄)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명작으로 분류되는 작품이지만 고증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잉글랜드 인들에 대한 묘사와 윌리엄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멜깁슨 감독은 무슨 이유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영화를 이렇게 각색한 것일까. 이유는 바로 민족이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단어로써 장원제로 인해 국가 관념이 약했던 13세기와는 다소 맞지 않는 단어다. 그럼에도 감독은 민족성을 13세기에 녹여 민족주의를 투영했다. 감독은 민족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영토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저런 비판을 감수하고 당시 상황을 각색한 것이다.

민족주의적인 이 영화가 각색한 내용들을 살펴보자. 영화에서 윌리엄이 잉글랜드 인들과 투쟁을 시작한 계기는 바로 ‘초야권’ 때문이다. 이는 신혼부부의 첫날밤 남편을 대신해 영주가 잠자리를 갖는 제도로 역사적으로는 실행된 적이 없지만 영화는 이 장치를 아주 잘 이용한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는 정치적 이유와 ‘스코틀랜드의 종자’를 없애기 위한 의도로 초야권을 발동한다. 영화에서 잉글랜드 인들은 ‘스코틀랜드 민족’의 처녀를 힘으로 겁탈하는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스코틀랜드 민족이 잉글랜드 민족의 불의에 맞서 자유를 위해 저항하는 것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이와 함께 잉글랜드 민족들과 스코틀랜드 민족이라는 ‘민족’간의 갈등구조로 사건이 전개된다.

실존인물들 또한 많은 각색을 거친다. 윌리엄은 본디 하급귀족 출신이고 정예 병력들을 이끌고 싸우던 사람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다르다. 귀족이라기보다는 스코틀랜드의 평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정예 병력보다 주먹구구식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치른다. 그 대신 윌리엄의 군대는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는 민족 집단으로 변화하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귀족들 간의 다툼이었던 이 전쟁이 ‘민족의 자유’를 위한 약소국의 투쟁의 형태가 된 것이다.

로버트 브루스 또한 인물에 대해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역사적으로도 그는 일시적으로 에드워드 1세에게 굴복한 건 사실이나 그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잉글랜드와의 전쟁에 참여한다. 영화는 그렇지 않다. 나병환자인 아버지의 말에 흔들리고 귀족들의 반대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 결과 스코틀랜드 민족을 배반하지만 나중에 윌리엄의 사상에 감화돼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투사가 된다. 잠시나마 에드워드 1세에 휘하에 있던 진짜 ‘브레이브 하트’는 잠시 민족을 버렸다는 이유로 수동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멜 깁슨은 기존의 역사의 민족주의를 가미해 새로운 역사적 인식을 창조하게 된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90년대는 세계사에서도 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유고 연방과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했다. 세계는 인종대청소나 대학살 등의 혼란이 증폭된 시기였다. 멜 깁슨 감독은 당시 급변하는 세상의 약소민족들을 위해 윌리엄을 빌려 마지막 한마디를 전한 게 아닐까 그가 수많은 강대국 잉글랜드 민족 앞에서 했던 그 말을 말이다.

김정수 기자  azzurrini22@ajou.ac.kr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주요뉴스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