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가는 길. 현관문을 지나 다가간 엘리베이터 앞에는 몇 층에 사는지 모르는 누군가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와의 어색한 눈맞춤 뒤에 정적만이 흐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를 따라가 각자의 층수를 누른 뒤 공허한 침묵 속에서 괜스레 핸드폰을 켜 시간을 본다. 엘리베이터에서 쫓기듯 내려 들어간 집에서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만을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타인의 방’은 단절된 사회 속 고독이라는 방 안에 갇힌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간 속에서 이웃과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한 ‘그’는 아무도 없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고독한 방에서 ‘그’는 우울과 불안을 느끼며 급기야 자신의 모든 물건과 더불어 자신의 방까지 낯설게 받아들이며 마치 ‘타인’의 방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는 결국 자신의 우울과 불안을 체념하며 방 안의 물건과 하나가 된다.

이 책의 중심소재는 단절된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다. 책이 쓰인 1970년대 당시는 급격한 산업화와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등장했던 시기다. 동네 주민들이 한데 모여 살며 함께 일했던 기존의 공동체 중심 사회에서 아파트에서 각자의 일터로 출근하는 개인적인 사회로 시대가 변하기 시작했다. 주거와 산업의 변화는 과거의 기억을 가진 개인에게 단절된 느낌을 줬고 이는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으로 이어졌다.

사회의 단절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실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해 사회가 비대면화되면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 이를 보여준다. 1970년대의 주거와 산업의 변화가 개인의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듯이 비대면 사회로의 변화는 개인에게 소외감을 야기했고 소설 속 ‘그’처럼 반복되는 우울과 불안을 쉽게 떨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단절이 심화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고자 노력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사회가 점차 단절됨에 따라 인간이 최소한으로 요하는 타인과의 연결 욕구는 충족되지 못했다. 단절된 사회 속에서 타인과 소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인간은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선택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타인과 연결하고 자기 삶을 타인에게 공유하고 타인의 삶에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그 사소한 소통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연결됐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감정은 현대인의 소외감을 줄여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소한 소통이 소설의 작가가 비판하던 단절된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소설 속 ‘그’는 고독감과 소외감에 체념하며 결국 물건이 됐다. 진정 ‘그’가 원했던 것이 물건이 되는 것이었을까. 소설의 시작. ‘그’는 아내가 자신을 맞아주기를 바랐고 집은 아늑한 공간이길 바랐다. ‘그’는 결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단지 자신으로 하여금 ‘그’가 혼자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사회와 연결되고 함께하길 원했다. 혹자는 사소한 소통이 불필요하다며 비웃겠지만 사소한 소통이 남들과 연결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소통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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