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이다.
누구나 새로 출발할 때에는 상큼하고 아름다운 꿈을 지니기 마련이다. 소망은 힘을 솟아나게 하고 열정적으로 노력하게 한다. 소망은 삶의 원동력인 것이다.
오늘 새내기들에게 합당한 말이 아닌가 싶다. 재학생들 중에는 웃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신입생 시절에 들어본 말인 걸. 그 소망은 곧 시들거야, 차가운 현실 앞에서 깨질 테니까…. 그렇다면 ‘새 출발, 소망’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아니, 나이 든 교수에게도 해당할지 모른다.
꿈을 잃은 사람은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소망을 접은 사람은 비틀거리고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런 일이 어찌 한 사람에게만 국한될까? 어느 특정한 사회, 특정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희망의 반대는 낙망(落望)이 아니라, 퇴락(頹落)이다. 그러기에 꿈을 품어야 한다. 
그런데 새 출발의 지점에서는 새 희망을 품어야 한다. 대학 진학을 위해 지난날에 품었던 소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정복하고 찬란한 문화를 건설한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은 무엇보다도 로마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이 외세의 침략 앞에 힘없이 무너진 것은 학벌 때문이 아니요, 당쟁 때문이 아니다. 노론의 300년 통치 때문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역사적 소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새내기들의 꿈은 부모나 교수들과는 달라야 한다. 2014년 3월 3일 오늘, 새내기와 기성세대가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그 꿈은 달라야 한다. 기성세대가 30년 전에 품었던 꿈, 그 꿈의 실체가 오늘이라면, 새내기들이 오늘 품는 꿈, 그 꿈의 실체는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난 2044년 3월 3일 오늘일 것이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 자신의 이상적인 꿈을 펼쳐냈고, 심훈은 <상록수>에서 농촌계몽의 꿈을 펼쳐내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마슬로바’라는 여성을 통해 그녀 자신만의 꿈길을 걷도록 했다. 지식인 토마스 모어나 작가 심훈의 꿈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작중인물 마슬로바의 꿈길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하지만 새내기의 꿈은 이들의 꿈과도 달라야 한다. 새로운 행복의 세계를 열어가기 위해서이다.
새내기의 주변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청년 실업의 시대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심지어 결혼한 후에 부모에게 붙어사는 ‘캥거루족’도 꽤나 된다고 한다. 동북아 국제 정세를 보더라도 일본과 중국은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그 틈새에 우리나라가 끼어있다. 더욱이 일본은 역사왜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중국은 중국대로 동북공정을 외친 때가 바로 엊그제이다. 중국, 일본은 자기네 길을 갈 뿐이지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다른 열강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우리 새내기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다.
위기는 기회다. 그런데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위기가 기회로 되는 길목에는 소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늘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소망을 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소망은 역경을 견뎌내게 하는 원동력이고, 새 미래를 만드는 반석이다. “독수리 날개쳐 올라가듯이” 저 푸른 하늘을 한껏 날아볼 때이다. 그런 활기찬 삶은 새로운 꿈을 품는 데에서 시작한다.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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