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출처=대우세계경영연구회>

1999년 11월 1일 대우그룹이 해체됐다. 부산의 소규모 봉제 업체로 시작한 대우그룹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우중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하에 수십 년이 흐른 후 29개의 계열사를 지닌 재계 3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몸집을 불려가던 대우그룹이 해체된 배경에는 IMF 금융위기 속 김 회장의 결정이 있었다. 금융위기 속에서 삼성전자는 자산매각과 인력감축 등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는 등의 구조조정 전략을 취했다. 반면 대우그룹은 ‘세계경영’ 전략을 택했다. 만성적 적자와 부채에도 외려 은행으로부터 차입금을 늘려 투자를 강행했고 부채 덩어리였던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의 공격적 경영을 펼쳤다. 그 결과는 89조가량의 빚으로 돌아왔고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만을 남긴 채 ‘세계경영’의 신화를 세웠던 김 회장의 대우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우그룹의 해체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달 5일 강원도가 보증한 채권인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설립한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을 발표함으로써 비롯된 일이다. 이는 곧 ‘신용’을 소중히 여기는 국내 채권시장의 극심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 그리고 5대 금융지주는 도합 1백87조 원 규모의 양적 완화 정책을 실행했다. 이에 따라 가속화된 인플레이션으로 높아진 물가를 잡고자 금리를 더 올리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김 회장과 김 지사에게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관할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 최고 결정권자라는 점이다. 김 회장은 금융위기 속에서의 공격적 경영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김 지사는 AAA등급 채권의 채무불이행 선언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의 자세다. 김 회장은 대우그룹의 해체 이후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 대출 혐의를 받았고 수사가 진행되자 베트남으로 5년 8개월간 도피했으며 인터폴에 수배령이 내려지자 국내로 돌아왔다. 김 지사도 사태 해결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기에 베트남으로 출장을 떠났고 국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조기 귀국하며 “좀 미안하죠”라는 말을 남겼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유명 기업의 광고 문구가 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많은 결정권을 갖게 된다. 결정권이 커진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결정에 수백 수천 명의 생계와 직업 그리고 국가 경제 상황 전반이 달려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 지사의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좀 미안하죠”라는 말속에는 어쩌면 그가 생각하던 자신의 결정에 따른 책임의 무게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일상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는 그 결정에 대해서.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