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죽음 혹은 심한 정신적 고통 그리고 불운에 대한 동정심을 ‘애도’라고 정의한다. 자신과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남’의 비극에 슬퍼하는 행위는 곧 결심과 판단을 수반한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대형 참사는 그 사회가 얼마나 안전한지를 드러낸다. 대형 참사 속에서의 애도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와 더불어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10.29 참사도 마찬가지다.

애도의 형식은 다양하다. 개인의 가치판단에 근거한 여러 판단과 다양한 결심이 수반되기에 애도는 개인적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동일해야 한다. 무엇이 더 희생자를 위한 것이며 그들을 기리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만 참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기도와 침묵 그리고 시위까지 모두 애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해 국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발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생자들을 기리고 진상규명에 힘쓰겠다는 취지는 누구나 납득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애도의 방식’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 장관은 정확한 사고 원인이 제시되기 전까지 섣부른 예측이나 선동 및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으나 이는 문제의 원인을 직시하지 않고 사건 관련 언급을 자제시키려는 발언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순수한 애도’라는 잣대가 또다시 적용되는 지금이다. 추모와 애도의 흐름 앞에 지자체 행사의 취소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거듭 제기되는 잡음은 그 방식이 과연 자연스러웠는지 의문을 자아낸다. 결국 윤 정부의 국가애도기간 동안 침묵 또는 정치를 벗어난 것만이 자유롭게 허용됐다.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통제할 경찰은 부족했고 일선 경찰의 증원 요구는 ‘윗선’에서 기각됐다. 책임 공방 속 수많은 이들이 단두대에 올랐으나 누구도 납득하지 못한다. 참사 발생 2주가 지나도록 진정한 책임자를 규명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질서와 법적 통제 내에서 안전하게 이뤄졌어야 할 행사가 방치돼 인명 피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을 포함한 본 사건의 애도 방식이 과연 ‘정치’ 바깥에서 이뤄질 수 있겠는가.

수만 가지 방식의 애도가 존재한다. 국가가 선포한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누군가의 애도는 더 나아가야 한다. 침묵도 기도도 애도지만 시위와 집회 또한 애도다. 우리 사회의 애도의 끝에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유의미한 제도적 변화가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