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 최근 많은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지난달 홍성의 모 중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을 포함해 들려오는 수많은 교권 추락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비단 틀린 말만은 아닌 듯하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강화된 학생인권이 교권 추락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체벌과 폭언이 사랑의 매로 치부될 정도로 이들의 관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시소게임을 반복하는 국내 교육현장의 참담한 실정은 영화 ‘디태치먼트’에 등장하는 학교의 모습과 유사하다.

‘디태치먼트’는 기간제 교사 헨리와 한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속 학생들은 교사를 모욕하고 그들의 수업을 방해하며 교사들은 모든 학생을 문제아로 치부하고 그들을 포기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작 교사의 손길이 필요한 학생은 방치되며 손을 놓지 않은 몇몇 교사들만이 점차 지쳐갈 뿐이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과거의 상처로 인해 학생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던 헨리는 벼랑 끝에 내몰려 본인에게 의지하려는 두 학생으로 인해 조금씩 변해간다. 비록 결말은 비극이지만 그럼에도 디태치먼트(분리)를 극복하려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의 학교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헨리는 메리더스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응원하고 메리더스는 헨리의 오랜 과거에서 비롯된 우울한 감정을 걱정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기쁨에 함께 기뻐하고 슬픔에는 함께 슬퍼하는 이들의 모습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에 대해 공감이 가능한 협력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은 결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이분법적인 관계라는 인식이 고착화된다면 어느 한쪽의 강화된 권한이 상대방에 대한 폭력으로 발현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교육현장에서 오랜 기간 지속된 교권과 학생인권의 시소게임은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폭력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체벌이 가능했던 과거 몽둥이에 얻어맞은 학생이 교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지는 자명한 일이다. 강화된 학생인권을 무기로 교사를 조롱하는 영상을 SNS에 게시한 일부 학생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서로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심각함에도 이를 뒤로한 채 교권과 학생인권의 균형을 찾으려 하니 어느 하나를 증진하면 어느 하나는 억압당하는 반비례적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권 혹은 학생인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따돌림당하는 메리더스를 편견없이 바라보고 응원을 전하는 유일한 사람은 헨리다.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무기력한 삶을 지속하는 헨리에게 위로를 전하는 사람 또한 그 누구도 아닌 메리더스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보편적 인권이라는 큰 틀에 묶인 동류의 개념이며 이들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서로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폭력으로부터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은 공존해야만 한다. 영화 속 헨리는 말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이들이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사는 학생의 보호자이자 동반자다. 메리더스 또한 말한다. “선생님은 절 진심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학생 역시 교사의 원동력이자 희망이다. 이들이 보다 가까웠더라면 메리더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속에서 우리의 학교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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