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봉해 1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이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이라는 기염을 토해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의 후반부에는 극심한 폭우로 인해 송강호(기택 역) 일가의 반지하 주택은 물론이고 그 일대가 전부 물에 잠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반면 이선균(박 사장 역) 가족이 거주하는 2층 규모 저택에서 비가 내린다는 것은 그저 넓디넓은 마당의 운치를 더해주는 장치일 뿐이다. 해당 영화는 대한민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불평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았으나 그 비극적인 시놉시스는 곧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지난 8일과 9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폭우로 인해 각종 재해가 잇따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쏟아진 것으로 알려진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일 강우량은 3백 80mm에 육박했다. 12시간을 기준으로 예상되는 강우량이 110mm 이상일 때 발효되는 호우주의보 그리고 180mm 이상일 때 발효되는 호우경보 기준을 훌쩍 넘긴 수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져 내리는 전례 없는 폭우에 1만 건을 상회하는 침수차 신고가 접수됐고 인도와 차도가 너나 할 것 없이 잠겨 교통 상황 자체가 마비되는 등의 피해가 이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인해 양일간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돼 최악의 인명 피해 역시 피하지 못했다. 횡사에 악사(惡死)와 호사(好死)가 어디 있겠냐만 급류에 휩쓸리거나 맨홀에 빨려드는 등 다양한 원인을 두고 발생한 사고 중 유달리 많은 이들이 울분의 목소리를 낸 것은 동작구 상도동과 관악구 신림동에서 발생한 반지하 침수 사망 사고였다. 특히 후자의 경우 숨진 이들 중 발달장애인과 초등학생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포함돼 있기에 그 비통함과 화제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반지하 주택이 아닌 오롯한 지상 건물에 거주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집과 살림살이가 잠기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돼있던 차량이 침수된 경우에도 자동차를 소유하면서부터 의무적으로 가입해둔 자동차보험이 있기에 그 대처 매뉴얼이 명확했다. 반면 반지하 주택의 경우 말 그대로 주택 구조의 절반이 지면 아래로 들어가 있기에 위와 같은 침수 피해로부터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지사다. 가까스로 변을 피한 반지하 주택주민들 역시 밤새 그치지 않는 비에 잠 못 이루며 직접 대야로 빗물을 퍼내고 수건으로 바닥을 훔쳐야 했다. 동작구 사당동의 반지하 단칸방에 거주 중인 필자의 지인 역시 “집이 저지대인 탓에 하수구가 역류하며 하수와 오물이 밀려 들어와 한동안 악취와 곰팡이에 시달리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옥과 같은 나날은 비가 그친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수재민이 돼버린 시민들은 당장에 생활할 곳이 잠겨버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원제도에 대한 고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수재민들은 SNS를 통해 답답한 심경을 공유했다. 이튿날 동사무소에 방문해 피해 사실을 직접 신고해야 하려 하니 침수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현장 사진을 제출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까지 이어졌다.

물이 들이닥친 집에 다시금 들어가 지원금을 타기 위해 구석구석 사진을 찍는 반지하 주민에게 이입해본 적이 있는가. 자연 현상으로 인한 재난 상황은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가리키는 재해는 사람을 가려 가며 크고 또 작은 가지각색의 모습을 띠기 마련이다. 아래로 떨어져 흘러드는 빗물은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이들을 겨냥해 적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어쩌면 남겨진 카드는 ‘각자도생(各自圖生)’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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