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과 9일 양일간 수도권과 강원 등 중부지방에 최대 4백9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수도권에서는 곳곳에서 도로가 통제되거나 주택이 침수되는 등 유례없는 피해가 잇따랐다. 5백48세대 9백82명이 집을 잃었으며 11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됐다. 거주 여건이 열악했던 이들에게 재난은 ‘재앙’이었다.

1995년의 미국 시카고는 역사상 가장 더운 날을 맞이했다. 폭염으로 인해 사망한 피해자는 7백 명이 넘었다. 하지만 죽음에 이른 이들은 사회에서 고립된 취약계층이 대다수였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2002년 저서 ‘폭염사회’를 통해 개인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율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만 죽음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 책 ‘폭염사회’의 교훈이다. ‘폭우사회’를 맞이한 한국은 어떠했는가. 서울 시내 지하 또는 반지하에 거주하던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그중 실제로 목숨을 잃은 사례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기상청 대변인은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폭우의 원인을 대기흐름이 막혀 한 곳에 정체되는 ‘블로킹’ 현상에 의한 장마전선 형성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블로킹이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상이변의 원인이며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비롯한 환경오염이 폭우를 발생시켰다면 그 대가는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이었다.

원인의 책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의 책임이다. 앞서 폭염사회의 교훈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된 집단이 재난에 취약하다면 정부는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영화 ‘기생충’에 등장했던 반지하가 직역돼 외신에 보도되는 등 우리 정부는 전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됐다. 재난상황 발생 전부터 취약한 거주환경을 방치하다 막상 재난이 닥치고도 기민하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 대처의 미숙함이 드러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19 확산에 취약했던 이들도 폭우 속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이들도 모두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었다. 재난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은 없다. 정부와 사회는 이들이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며 피해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가에 있다. 조치하지 않는 재난은 ‘재앙’이 된다. 재난이 재앙으로 또다시 번지지 않도록 우리 정부 또한 ‘폭우사회’를 교훈 삼아 사회적 취약계층의 재난상황 및 전반적인 여건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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