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2년차를 맞이하는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 플레잉 코치는 이제 E-Sports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서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로 그리고 지금은 선수와 감독을 병행하는 플레잉 코치의 역할로 삼성게임단을 지키고 있다. 계절의 변함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처럼 한 게임단만을 꿋꿋하게 고집하는 송병구 선수를 만나볼 수 있었다.

Q.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2004년부터 삼성게임단에서 프로게이머로 있다가 작년 11월부터 플레잉 코치로 전향했다. 내가 자랑스럽게 붙일 수 있는 타이틀이라면 이 업계에서 연장자로 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로는 2004년에 방송에 나왔는데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건 2005년이다. 프로게이머를 직업으로 삼은 이유는 학창시절 게임을 좋아해서 한 것이다. 그러다 대회에도 참가했다. 거기서 내가 프로게이머들과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더라. 그래서 “아 열심히 연습하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를 부모님에게 했더니 부모님이 안 믿어주셨다. 그래도 계속 연습해 대회에서 상금도 받아오니까 부모님이 응원해주시고 서울에 올라가서 합숙하는 것도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2004년에 9월 삼성게임단에 들어가게 됐고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플레잉코치로서 E-Sports에 몸담고 있게 됐다.

Q.프로게이머랭킹에서 항상 상위권에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A.사실 이전에도 이런 질문들을 많이 받았다. 예전에는 ‘내가 누구보다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지나고 깨달았는데 삼성게임단이라는 팀에 들어왔고 이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 그 자체가 비결이었다. 특히 김가을 감독은 업무적으로 냉정할 때와 사적으로 너그러울 때를 잘 구분해줬던 사람이었다. 또 선배로서 최우범 선수도 기억에 남고 동기인 주영달 선수 같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지내는 동안 나 자신을 많이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일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Q.2006년도에 눈에 띄는 성적은 없었는데 2007년부터 성적이 급상승했다. 당시 어떤 계기가 있었나?
A.2006년에는 내가 너무 방황했다. 기대했던 것 보다 성적도 안 나오고 자유로운 팀 분위기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로 바뀌니까 적응이 안됐다. 그리고 내가 다른 게임을 해도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만심에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다른 게임을 엄청나게 했다. 당연히 성적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내가 팀의 에이스로 대접받았는데 어느 순간 예전 같지 않아진 나한테 화가 났다. 그리고 삼성게임단은 전통적으로 2:2만 잘했고 개인전은 다소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삼성게임단이 1:1에서는 잘하는 팀이 아니라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나에게 있어 스타크래프트는 1:1게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팀도 1:1이 강한 팀이 돼야 한다는 오기가 생겨 미친 듯이 연습했다. 새벽 4시까지 잠도 줄이면서 게임만 했고 그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됐다. 그 덕택에 2007 다음스타리그에서 4강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다음스타리그에서 처음으로 4강에 올라갔었다. 그때 8강에서 박정석 선수라는 인기 많은 선수를 잡고 나서 흥행망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 이영호 선수와의 경기에서 누가 봐도 지는 상황을 역전시켰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현장에서 가장 호응 좋은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다. 

Q.프로게이머의 매력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A.프로게이머들의 평균 연령이 전체적으로 어리다보니 그들만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가끔 군기로 인한 논란도 있고 신체적인 충돌이 있다 보니 몸싸움도 빈번히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프로게이머들은 물리적 충돌 없이 순수한 경쟁심으로만 게임을 한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순수한 경쟁심이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E-Sports는 전설적인 기록이 하나 있다. 한 프로게이머가 5번 결승에 올라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이다. 바로 홍진호다. 팬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우승은 못하고 준우승만 하는 프로게이머들을 그의 별명을 본 따 ‘콩라인’이라 부른다. 송병구는 그 콩라인의 첫 번째 선수였다. 팬들은 그가 준우승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고 자신 또한 좌절의 부딪혔다. 하위 토너먼트에서는 그 누구와 싸워도 상대를 압도하던 그는 결승만 가면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많은 팬들은 “송병구는 콩라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비아냥댔다. 송병구는 우승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가장 먼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08년 자신이 더 이상 콩라인이 아님을 만천하에 선포하듯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렸다.

Q.커리어에 유독 준우승이 많다. 준우승자로서의 설움 같은 것이 있었나
A.사실 준우승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두 번째로 잘했다는 거다. 그래도 2007년 WCG(World Cyber Games)에서 우승하고 나서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고 많은 사람들도 내가 우승하는 게 당연하다고 얘기해줬다. 그래서 8강이나 4강은 자신 있게 뚫었는데 이상하게 결승만 가면 졌다. 치열하게 싸우고 졌으면 모르겠는데 경기력도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팬들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좌절도 많이 하게되서 “나는 우승할 그릇이 안되나 보다”라는 생각까지 들게 됐다.
모든 준우승이 아쉽긴 하지만 제일 아쉬운건 WCG 2009년이다. 이제동 선수와의 결승이었는데 중요한 기술개발 하나를 누르지 않아 끝나야 할 경기가 안 끝나고 1경기를 패배해서 준우승을 한 것이다. WCG를 두 번 우승하면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는데 그 욕심 때문에 긴장을 해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우승트로피를 놓쳤던 게 너무 아쉬웠다.

Q.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드디어 우승을 거뒀었다.
A.사실 이전보다 연습을 더 안했다. 예전에는 내가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새벽 4시까지 연습하고 나를 혹독하게 대했는데 그것이 결승전에 가면 기량이 떨어지는 이유라 생각했다. 그래서 쉴 때 쉬고 연습할 때 연습했더니 결승에서 더 좋은 경기력으로 2:0으로 정명훈 선수를 이기게 되더라. 그래서 “이젠 한 경기만 잡으면 꿈에 그리던 우승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2:2로 따라잡히게 됐다. 또다시 머릿속에 “나는 그릇이 준우승밖에 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포기하는 감정으로 마음을 놓았는데 오히려 경기력이 더 향상됐었다.

 

2008 인크루트 스타리그 우승 당시
2008 인크루트 스타리그 우승 당시

 

 

 

 

 

 

 

 

 

 

 

 

 

 

 

 

Q.스타크래프트 기반 E-Sports가 몰락하고 난 뒤 스타크래프트2를 선택한 이유는
A.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삼성게임단과 계약기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2를 선택하게 됐다. 다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는 프로게이머였는데 스타크래프트2를 가도 잘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특히 나보다 잘하는 선수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올 때 마다 불안함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나는 스타크래프트2가 제일 재밌었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2를 선택한 것이다. 몇몇 프로게이머들은 당시 뜨고 있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나 다른 살길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나는 프로로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Q.스타크래프트2가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을 때 후회하지는 않았는지
A.나 뿐만 아니라 스타크래프트2를 선택한 모든 프로게이머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예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관중들의 숫자와 열악한 스튜디오의 환경을 직접 겪어보니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 걸까?”, “지금이라도 리그 오브 레전드로 전향할까”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기준을 다시 잡으면 스타크래프트2 리그는 한 번도 침체기를 겪은 적이 없는 리그다.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의 황금기 때와 지금의 스타크래프트2를 비교하니까 침체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스타크래프트2 리그는 2012년에 출범한 이래로 계속 발전해왔다. E-Sports에서 가장 잘나가는 종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점점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Q.2013년 송병구 선수답지 않은 극심한 부진을 겪었을 때 힘들지 않았는지
A.너무 많이 힘들었다. 2012년부터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2를 둘을 병행했다. 두 게임은 완전히 다른데 단지 후속작이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때 딜레마에 빠졌던 게 스타크래프트를 하자니 이제 없어질 게임을 붙잡고 있는 것이어서 내 미래가 걱정됐다. 그렇다고 안하자니 나에게 기대하는 팬들을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스타크래프트2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나는 점점 뒤처지는 것 같고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서 살도 많이 쪘다. 아무래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몸도 안 좋아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2014년이 되니 이대로 망가진 성적으로 커리어를 끝낼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열심히 노력하니 2014년 즈음엔 기대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기량이 회복됐다.

사람이라면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는 일어났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다잡았다. 송병구 선수는 자신에게 있어서 라이벌이라는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많은 선수들이 경쟁하는 E-Sports에서 꾸준히 성적을 유지하던 비결은 이것이 아니었을까싶다.

Q.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특성상 별명이 엄청 많은데 자신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별명이 있었나
A.별명보단 이름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사람들이 많이 불러주는 ‘무결점의 총사령관’은 너무 길고 억지로 붙인 느낌이다. 콩라인이라는 별명도 예전에는 나만의 것이었는데 정명훈 선수나 허영무 선수 같은 프로게이머들도 같은 별명을 얻게 되니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상하게 내 별명은 다른 프로게이머들의 별명과 다르게 송틸리케, 공변뱅 등의 희화화된 별명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이름으로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플레잉 코치로 전환했다. 기분이 어떤가
A.솔직히 힘들다. 두 일을 병행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 나는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다. 프로게이머는 자기관리만 잘하면 되는데 코치는 선수들도 신경써줘야 하고 삼성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거기다가 나는 선수까지 겸임하고 있으니 더 많은 열정을 쏟아야 한다. 다행히 김동건 코치가 있어서 업무를 어느 정도 분담해주고 있지만 심적인 부담감은 어쩔 수 없다. 또 김가을 전 감독에게 도움을 받았듯 내 밑에 있는 선수들에게 내가 받았던 것을 전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Q.삼성 게임단을 제외하고 어느 곳도 가지 않았다. 삼성 게임단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A.이적이라는 건 내가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다른 구단의 고연봉자들은 그만큼 많은 통제와 관리를 받게 되는데 나는 그런 게 싫다. 삼성에서 나에게 해줬던 자유로운 대우와 분위기가 나에게 잘 맞았고 그것이 내 성적이 나오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줬다. 또 나는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를 롤모델로 삼는다. 일본으로 한번 이적하긴 했지만 국내에선 쭉 삼성을 위해 뛰는 선수다. 삼성 사람들에게 이승엽 선수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 존재만으로도 응원 받는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Q.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요즘 게임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욕설을 한다. 예전에는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요즘은 게임이 실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다. 게임에서나 실제로 사람을 대할 때나 똑같다. 아무리 게임에서 만난 사람이라도 함부로 욕하지 말고 게임도 하나의 문화생활이니까 서로 배려하면서 했으면 좋겠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송병구라는 사람의 인생역정이 그의 등 뒤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느낌을 받았다. 좌절하더라도 털고 일어나는 것과 프로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에 몰두하는 그 모습이 오늘날의 송병구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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