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11일 1급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의 재판정에 서게 됐다. 재판을 통해 드러난 아이히만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평범한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일 것으로 추측했지만 의사들은 그가 정상이라고 말했으며 나치 패망 후 아르헨티나 거주 당시 이웃들은 그를 자상한 아버지이자 친절한 이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전범이다.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단지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그다음 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비이상적인 사회 속 작은 쳇바퀴가 돼 무엇을 잘못 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군의 잔혹한 만행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4일까지 체르니히우와 하르키우 그리고 키이우 등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전쟁 범죄 사례들이 우크라이나군을 통해 발표됐다. 발표에는 러시아군의 강간 범죄와 남성 6명에 대한 살해 그리고 민간 재산 약탈 등이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홀로스당 소속 하원의원 레시아 바실렌코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강간당한 뒤 고문 살해된 여성의 시신’이라며 사진 한 장을 공유했다. 사진에는 한 여성의 배에 나치를 상징하는 문양인 스바스티카가 붉게 새겨진 모습이 담겨 있었다.

러시아군은 아이히만과 다를 게 없다. 푸틴의 명령 아래 그들은 본인의 죄를 외면하는 중이다. 푸틴은 자국 내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군사 작전’으로 대체해 러시아군의 죄책감을 덜고 있다. ‘유대인 학살’을 ‘궁극적 해결’이라 말한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비이상적인 사회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잃게 했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비이상적인 사회 속에서는 언제나 광기에 물들 수 있다.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반인도 아이히만과 지금의 러시아군처럼 나라에 충성을 다하자는 명목하에 전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아이히만과 러시아군을 절대 남의 일 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우크라 사태에서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군도 아이히만과 같이 누군가의 자상한 아버지이자 친절한 이웃이었을 지도 모른다. 종전된 후 러시아 전범들은 아이히만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성찰하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판단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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