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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 불꽃을 기억하며
  • 윤주선 수습기자
  • 승인 2022.03.2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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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우리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당연하게도 직접 선택했다. 그러나 이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내 손으로 나의 대표자를 직접 뽑는다는 당위가 자리잡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뒷받침됐으며 그 시작에는 3.15 의거가 있었다.

3.15 의거는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 유지를 위한 부정선거에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항거한 사건이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은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고 본인의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감행했다. 이에 마산시민과 학생들은 투표를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후 시위에 참여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며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 사건은 4.19 혁명의 불씨가 됐으며 그 불씨는 5.18 운동과 6.10 운동으로 꺼지지 않고 점차 타들어갔다.

이들이 국가가 겨눈 총구 앞에 서면서까지 지켜내고자 한 가치는 결코 단순한 참정권의 보장만이 아니다. 민중이 바란 것은 공정한 선거제도에 기반한 진정한 민주주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린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나의 이익을 대표할 사람을 내가 직접 선택하는 선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시민임을 자처한 이들은 자신의 권리가 위협받던 모든 순간 거리로 뛰쳐나와 총구 앞에서 목소리를 냈고 이에 우리는 이번에도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희생에 근거한 만큼 우리는 적어도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의 문제에 관해선 까다로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서 발생한 논란은 이 가치를 훼손하기에 충분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부터 기재된 투표용지 배부와 투표지 보관 장소 CCTV 관리 미흡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르더니 이전부터 지적됐던 투표지 소쿠리 운반 등의 문제로 많은 공분을 샀다. 이외에도 한 사람이 두 번 투표를 한다거나 유권자 한 명에게 투표지 두 장을 주는 등 학창시절 반장선거 때도 보기 힘들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며 각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부평에서는 선관위와 시민단체가 서로를 맞고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피로 일궈낸 선거원칙이 그것들을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는 선관위에 의해 여실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에 선관위 측은 본인들의 관리 미흡임을 인정했으나 책임을 지는 태도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사실상 사퇴 요구를 거부했으며 역시 사퇴를 거부하던 김세환 사무총장은 아들의 인사 특혜 논란 직후 돌연 사퇴하는 황당한 행보를 보였다. 현재 선관위 측은 본인들의 안일함으로 발생한 이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선관위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적절한 처벌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

우리에게도 그 책임은 있다. 모든 권리는 의무와 함께 존재하듯이 민주시민인 우리에겐 참여라는 의무가 존재하며 선관위에 대한 날카로운 감시와 비판 또한 참여의 일부다. 현재 정치권은 정권교체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에 분주하기라도 한 듯 선관위에 대해 전보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관심 또한 점차 사그라드는 추세다. 만일 해당 논란이 선관위의 무책임한 태도에도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면 언젠가 올바른 선거관리체계를 위협하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60년이 넘는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타오르던 3월의 불꽃을 꺼트릴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출처=국가기록원>

윤주선 수습기자  dbswntjs9090@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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