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무심코 봤던 쪽방촌 다큐멘터리는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지방에 사는 필자에게 서울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도시였다. 서울에도 전혀 ‘서울’스럽지 않은 쪽방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직접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2일 서울역 인근에 있는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갔다. 점심 무렵 동자동에 도착해 쪽방촌을 둘러봤다. 쪽방촌은 항상 보던 화려한 서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곳곳에 걸려있는 ‘여인숙’ 간판과 대낮임에도 술에 취한 사람들 그리고 눈에 띄게 낡은 건물들은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긴장감을 가득 안고 쪽방촌을 걷다 보니 어느새 쪽방촌 주민부터 자원봉사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긴장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동자동 쪽방촌은 정이 많은 동네였다.

쪽방촌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에 사는 사람’

쪽방촌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이 씨(65)와 황 씨(42)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인터뷰 해줄게. 우리가 무서워 보여도 정이 많은 사람이야” 처음에는 그들의 친절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무슨 의도라도 가지고 접근한 것 같아 무서웠다. 하지만 그들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편협한 생각을 반성할 수 있었다. 이 씨와 황 씨는 쪽방촌에서 10년 이상 거주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들은 선뜻 집구경을 시켜주기도 했고 과거 쪽방촌의 모습과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서슴없이 얘기했다. 이 씨는 쪽방촌에서 사는 건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당뇨와 뇌졸중으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적적할 때면 쪽방촌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남산타워 산책도 다니며 건강을 챙기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19(이하 코로나 19)로 인해 이 씨와 황 씨를 비롯한 쪽방촌 주민들은 당장 병원에 갈 일이 생겨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이 우려를 낳고 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

용산구 주민 박 씨(22)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며 쪽방촌 주민들을 마주치곤 한다. 저녁에 쪽방촌을 지나가면 가로등이 부족하고 분위기가 어두운 사람들이 있어서 쪽방촌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박 씨는 쪽방촌 주민과 반려견 얘기를 하며 친해졌다. 박 씨는 “요즘은 쪽방촌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다”며 “쪽방촌 주민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쪽방촌에 산다고 해서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색안경을 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전했다.

‘그곳을 돕는 사람’

서울역 노숙자들과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행복한 밥상’을 주최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행복나눔플러스 사무총장 임종수 씨(57)는 쪽방촌 주변에 있는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무료 밥 나누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필자는 쪽방촌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힘들 법도 한데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쪽방촌 주민들을 맞이하고 밥을 나눠주고 뒷정리까지 하며 쪽방촌 주민들의 토요일 점심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임 씨는 바쁜 상황 속에서 “밥 먹고 가요”라고 말하며 필자를 챙기기도 했다. 그런 따뜻함 때문인지 그는 쪽방촌 주민들과도 매우 가까워 보였다. 잠깐이지만 임 씨의 행동과 말을 통해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임 씨는 “행복한 밥상을 진행하며 쪽방촌 주민들을 도울 수 있어 보람 있다”며 “서울역 노숙자와 쪽방촌 주민들이 스스로 삶을 터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전했다.

정말 만족해서일까? 그곳이 최선이어서일까?

한눈에 봐도 낡아 보이는 건물들. 그 낡은 건물들 사이에 이 씨의 집도 있다. 이 씨의 도움으로 쪽방촌 건물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건물 입구부터 센서등이 작동되지 않아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해 계단을 오를 때 발을 헛디딜까 걱정됐다. 심지어 쪽방촌에는 주로 노인과 몸이 아픈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턱이 높은 계단과 자주 고장 나는 시설물로 인해 생활에 불편함이 있지만 집주인에게 건의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1평 남짓한 방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화장실은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공용 화장실이다. 화장실 또한 비좁은 상태고 그곳에서 목욕까지 해야 한다. 쪽방촌에 있는 건물들은 지하가 아님에도 창문이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더불어 약을 뿌려도 계속 나오는 바퀴벌레는 같이 살다시피 하고 있어 쪽방촌 주민들의 큰 골칫거리라고 한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1평 남짓한 방에 살기 위해서 한 달에 대략 18만 원에서 26만 원 가량의 월세를 내야 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마저 없다면 쪽방촌 주민들은 길에서 생활하거나 다른 쪽방촌으로 이주해야 한다. 그들이 개미굴 마냥 방을 쪼개놓은 쪽방촌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동자동은 남영동 주민센터 관할 구역이다. 남영동 주민센터는 동자동 쪽방촌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남영동에는 수급자 1천3백 가구가 있다. 그중에 생계급여를 받는 가구는 1천95가구다. 생계급여는 1인 가구 기준으로 한 달에 최대 58만3천4백44원이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남영동 주민센터는 쪽방촌 건물들을 직접적으로 관리할 권한이 없어 쪽방촌 건물들의 열악한 환경을 고칠 수 없다. 대신 찾아가는 동사무소와 사례관리 서비스를 통해 매일 출장을 나가 대상자 방문을 시행하고 있다. 더불어 쪽방촌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쪽방촌 주민들을 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하고 이사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주택토지공사 및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협업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 사업의 일환으로는 여름이나 겨울에 에어컨이나 난방기구를 지원해주고 있다.

공공주택 개발, 반대 vs 찬성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주택 개발로 떠들썩하다.

동자동에 들어서자마자 ‘서울역 동자동 공공주택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라고 적힌 큰 현수막과 쪽방촌 곳곳에 걸린 빨간 깃발을 볼 수 있었다. 현수막과 빨간 깃발은 쪽방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집주인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민간개발을 원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공공주택 개발을 반대하기 위해 큰 현수막과 빨간 깃발을 사들여 건물에 걸어놓고 그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동자동 건물과 동자동 사랑방 게시판에는 공공주택 개발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쪽방촌 입주민의 대부분은 공공주택 개발을 찬성한다. 공공주택 개발 시 더 쾌적한 곳에서 지낼 수 있고 이주 비용 지급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씨와 황 씨를 포함한 쪽방촌 주민들에게 공공주택 개발은 희소식이다. 황 씨는 “공공주택 개발 시 쪽방촌이 철거돼 이주 비용을 국가에서 지급해준다”며 “공공주택 개발은 한다고 발표한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전했다. 공공주택 개발에 관한 첨예한 갈등과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 정부에서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개발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다. 동자동에서 이발 봉사와 도시락 나눔 봉사를 하고 있는 해피인 관리 팀장 강홍렬 씨(66)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치인을 만나 자유발언을 하고 동자동 사랑방 주민들과 함께 시위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선거 기간에만 귀 기울여 듣고 그 이후에는 입을 싹 닫고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전했다. 사회는 변화하기 쉽지 않다는 강 씨의 말에서 그동안 그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시혜적 지원 아냐

매주 토요일 동자동 쪽방촌 주변에 위치한 등불교회에서는 주민들에게 무료 밥 나눠주기를 진행하고 있다. 교회에서 주관하는 밥 나눠주기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신자를 만나봤다. 그는 쪽방촌 주민들이 식사하고 난 후 감사의 말을 전할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우리나라 복지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쪽방촌 주민 중 일부는 건강 상태도 양호하고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이 밥과 후원 물품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때에 맞춰 지급해준다. 이에 쪽방촌 주민의 대부분은 자활을 하기보다 봉사자들의 손길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쪽방촌을 돌아다니면서 지켜본 결과 몸이 불편한 주민들이 있었지만 건강해 보이는 주민도 많았다. 이 씨 또한 몸이 불편하긴 해도 박스 줍는 일을 하며 간간이 돈을 벌고 있었다. 신자는 그들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하고 물질적 후원을 해줄 게 아니라 자활사업을 통해 스스로 생계유지를 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KT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자활사업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한 바 있다. 하지만 자활사업을 시행해도 지속적으로 쪽방촌 주민들의 자활을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쪽방촌 주민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자활을 시도하다 포기하게 되면 다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쪽방촌을 돌아다니며 놀란 점은 다수의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그들의 거주 환경은 참혹했다. 기본적인 주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의식변화와 그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물질적인 지원만은 쪽방촌 주민을 위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주민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자활 사업과 일자리 연계가 확대돼야 한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비롯해 취약계층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지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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