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익명을 알고 있다. 황우석 박사가 쓴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다고 제보한 익명. N번방 사건을 파헤쳐 제보한 익명. 고아원에 거액을 기부하고 사라진 익명. 익명은 앞으로 나서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안전한 가면을 씌워준다. 익명이라는 보호 제도 속 많은 사람이 용기 있게 내부고발자로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익명을 믿지 않는다. 누군가 어떤 문제를 고발하면 익명이 아닌 실명을 사용하라고 요구한다. 이 때문에 미투 운동에 나선 사람들은 직접 뉴스에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말했다. 자신이 하는 말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제보자들은 이런 요구들이 야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순간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많은 익명의 제보자분들에겐 감사하지만 책임감 없는 대다수 익명들은 사회를 해친다. 지난달 우리 학교 에브리타임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를 앞두고 연랑제 당시 총학생회가 저지른 만행을 제보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회계와 소통 그리고 위원장들의 태도까지 고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내용 중 고발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21일 감사위원회가 연랑제 특별감사 보고서를 공개했지만 예산 사용 문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실명을 공개하고 나온 총학생회 후보자들이 집중포화를 맞는 동안 익명의 제보자들은 아무런 책임 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만 반복했다. 어떤 점이 정확히 문제였는지. 왜 현재 총학생회 후보자들은 총학생회 회장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재했다. 사람들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끝없는 비판만 반복했다.

익명들은 학교 사회에 관심이 많아서 총학생회 후보자를 헐뜯은 것도 아니었다. 18일 진행됐던 공청회에선 실시간 최대 시청자가 50명을 채 넘지 못했다. 1만 명에 가까운 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익명 뒤에 숨어 거침없이 비방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학교를 걱정하는 마음에 회장 후보를 비판한 게 아니라 단순히 씹을거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OO대 회장 후보가 평판이 안 좋았다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지는 익명. 연랑제 회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고 사라지는 익명.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제보에 부담감을 느껴 익명으로 제보하는 건 좋다. 하지만 책임감 없는 짧은 말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력만 남긴 채 무책임하게 사라진다. 익명을 원하는 제보자와 제보를 지켜보는 익명들. 그들 모두가 조금 더 성숙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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