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마감일이 다가온다. 매번 마감일은 후회를 불러온다. 아 조금만 빨리 인터뷰를 요청했으면 이렇게 촉박하지 않을 텐데. 정말 이게 정말 필요한 기사일까. 결국 이번 글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눈 꼭 감고 완성되었다고 우겨본다. 그렇게 글을 들고 간 마감일의 학보사 실은 마치 응급실처럼 분주하다. 구급차를 타고 실려 온 환자처럼 곳곳이 상처 난 내 글을 편집장과 다른 기자들이 열심히 치료해준다. 촌각을 다투며 타닥타닥 쌓여가는 글자들은 여기저기 흉터가 나 있고, 아쉬운 대로 마감한 글은 그렇게 학보에 오점을 남긴다.

그렇게 맘 졸이길 9번. 별로 한 것이 없는 듯 아홉 번의 학보를 만들어냈고 수습 딱지를 떼고 정 기자가 됐다.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며 나름 기사 쓰는 기계가 된 것 같기도, 아니 여전히 원고지 10매를 넘기기 힘든 나의 취재 능력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뭘 취재해야 할까. 아니 내가 쓴 기사를 누군가 보긴 할까.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기사를 잘 쓰고자 하는 욕구와 대충 때우고 싶은 맘 가운데서 늘 고민한다.

도대체 이번엔 무슨 기사를 써야 하나 머리를 쥐 뜯어보지만, 생각나는 게 없어 또 편집장에게 연락해 주제를 구걸해본다. 사실 기획 기사는 관심 주제를 다루다 보니 스윽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주제로 택하면 어느 정도 기사가 완성된다. 하지만 코로나 학번으로 사이버 대학을 다니던 내겐 보도 기사 소재 즉 학교와 관련된 기사를 작성하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특히 보도 기사를 쓸 때면 내가 관심 있어서 쓰는 기사라기보단 학보의 한 부분을 활자로 채워 넣는 기계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기자 했나 자괴감이 들고 보도 기사를 쓰는 순간들은 너무 괴로웠다.

3주에 기사 두세 개를 완성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다. 하지만 3주에 3개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나를 정신적으로 꽤 괴롭게 했다. 마감이 주는 압박이 늘 상주했고, 마음 한켠이 늘 무거웠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치열하게 고민하며 기사를 썼다고는 못하겠다. 글을 쓰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고 힘들었기에 빨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 컸었기 때문이다.

사실 학보 기자를 시작하던 시점은 기자라는 나의 진로에 싫증이 났던 때이다. 나조차 불신하게 되는 언론에 회의를 느꼈고, 더는 기사 쓰는 일에 가슴이 뛰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기사 잘 읽었다고 보내주는 메시지와 취재를 하며 듣는 응원의 말들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했다. 왜 내가 이 직업을 꿈꿔왔는지를 상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작은 기사 하나하나를 완성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게 기자로서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다시 노트북을 켜고 한 자 한 자 적어나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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