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다양한 사랑이야기가 나온다. 보편적이고 공감하기 쉬운 일상적인 사랑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장르가 다양하듯이 영화 속 사랑이야기도 무궁무진하다. 이번 기사에는 보편적이지 않지만 이입하고 볼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 3개를 추천하려 한다.

 

1.내가 진짜 뭐에 씌웠나 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불한당은 마약을 유통하는 조폭 한재호와 조폭을 잡기 위해 스파이로 들어가게 되는 경찰 김현수의 관계를 그린 영화이다. 불한당은 대놓고 사랑을 그리지 않는다. 달달한 연애라거나 심지어 고백하는 장면 하나도 없다, 겉으로만 보면 남자 인물들과 천 팀장 하나만 여자인 누아르 영화 그 자체이다. 누아르 장르로 봤을 때 경찰이 조폭에 스파이로 잠입하는 내용은 굉장히 많은데, 이미 너무 많은 곳에 나와서 거의 클리셰로 보일 정도이다. 불한당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아류작으로 보일 수도 있을 만큼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아주 뻔한 누아르에 정말 낯선 멜로를 살짝 숨겨 넣으면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냈다. 한재호가 다른 비슷한 누아르 영화에서와는 달리 김현수에게 부하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대하는 점이나 연기의 톤이 거의 멜로에 가깝다. 김현수가 한재호에게 말을 하는 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하로써 하는 태도가 아니며 도중에 넥타이를 만져주는 장면은 퀴어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한재호는 김현수를 언제나 자기라고 호칭하며 반한 듯이 쳐다보기까지 한다. 그들의 관계는 사랑에 가깝다. 그 감정선이 너무 잘 드러나 있어서 그들이 언제 반했고 그들이 서로를 위해 뭘 버리는지 보고 있자면 멜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도 이입할 수 있다.

이외에도 대사나 장면들이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어떤 관점으로 보냐에 따라 다양한 감정에 이입할 수 있다. 천 팀장이라는 인물을 살펴보면 욕심에 대한 메시지도 볼 수 있다. 천 팀장은 자신의 목적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뚜렷한 사람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하가 목숨을 잃는 것도 어머니를 잃어서 힘들어하는 것도 자신에게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 인물이기에 천 팀장은 모순적이게도 목적에 실패한다. 천 팀장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이다.

 

2.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아가씨>

아가씨는 일제강점기 부잣집 아가씨 히데코와 대도둑의 딸인 숙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히데코는 어머니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친일파인 이모부에게 모두 맡겼다. 한마디로 철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인 히데코를 보고 사기를 치기 위해 고판돌이라는 사기꾼은 대도둑 보영당의 딸 숙희를 데리고 귀족으로 위장하여 저택에 들어간다. 숙희는 히데코를 돌보는 하녀로 위장하여 들어갔지만 실상은 히데코를 고판돌과 결혼시켜서 히데코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후 히데코의 재산 일부를 나눠갖기 위해 저택에 들어간다. 다시 말해 숙희는 히데코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저택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바깥세상모르고 자라온 히데코는 어딘가 짠하고 너무 아름다웠다. 숙희는 그런 히데코에게 동정에서 연민으로 연민에서 애정으로 점점 막을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숙희는 자신이 곧 받아낼 재산과 챙겨야 할 보영당 식구들을 생각하며 그런 감정을 애써 부정한다. 그러나 영화는 더 크고 더 아름다운 반전을 숨기고 있다.

아가씨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간의 사랑은 단순히 여자 둘의 사랑을 그려낸 것이 아니다. 주인공의 아리고 아름다운 사랑과 주인공 각각의 인생에 담긴 자유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보면 한없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제 손으로 망쳐야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한평생 억눌려있던 인생을 모두 제치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에 많은 상징과 의미를 숨겨두고는 하는데, 이 영화에는 보면 볼수록 많은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숙희의 감정선을 따라 보면 숙희가 반하는 장면이나 숙희가 점점 자신의 이익을 버려가면서까지 히데코를 잡는 모습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반대로 히데코의 입장에서 영화에 이입하게 되면 숙희가 히데코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가 결국 구원자가 되는 감정선을 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남자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로만 나오는 것도 주인공에게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아가씨는 보는 눈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3.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나는 어제 내일의 너를 만난다,>

<나는 어제 내일의 너를 만난다>는 타카토시와 에미의 사랑이야기이다. 영화의 설정은 새롭다. 타카토시와 에미의 시간은 서로 반대로 흐른다. 예를 들어서 에미의 30살에는 타카토시의 10살로 만나고 에미의 10살에는 타카토시의 30살로 만나는 것이다. 하루를 단위로 시간이 반대로 바뀐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대로 주인공인 타카토시는 내일 어제의 에미를 만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쉽사리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하고 복잡한 것에 비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은 시간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설정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에 주목해서 영화를 보면 감정에 쉽게 이입해서 볼 수 있다. 처음 타카토시가 에미를 보고 반해서 연애를 시작하는 장면들에서는 풋풋한 첫사랑 같은 감정을 볼 수 있다. 이후에 에미가 단순히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 평행우주 혹은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을 안 후로 타카토시가 느끼는 혼란과 그럼에도 에미를 사랑하는 맘이 잘 드러나 있다. 내용 자체로는 시간 설정이 들어간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타카토시의 감정선 자체는 일상 속에서 우리들이 연애를 하면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권태기나 애인과의 싸움과 비슷하다. 이후에 타카토시는 에미가 과거에서 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납득하고도 에미와 계속 만난다. 25살의 에미를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날, 타카토시는 성인이 된 타카토시를 처음 봤던 에미를 마지막으로 보고 의연하게 자신의 어제를 그리고 에미의 내일을 알려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도 이별에 대해 혼란함을 느끼던 감정도 사라지고 대신 추억을 소중히 할 줄 아는 감정이 타카토시가 웃으면서 에미를 보내주는 장면에서 느껴진다.

일본 영화계 특유의 엉뚱한 시간 설정이나 대사에 낯설다면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시간 설정으로 인해 극대화된 연인 간의 보편적인 감정들과 성장 과정을 보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영화이다. 그리고 처음 볼 때의 느낌과 두 번째 모든 에미의 이야기를 알고 나서 보는 느낌 또한 매우 다르니 둘의 느낌을 모두 느껴보는 신기한 경험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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