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18.44m의 거리에서 던진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타자의 존에 꽂힙니다. 공은 심판의 판정에 따라 스트라이크가 될지 볼이 될지 결정됩니다. 스트라이크 존은 상대적입니다. 가로로는 57cm, 세로로는 타자의 어깨 윗부분부터 무릎 아랫부분까지를 기준으로 삼는 짧은 공간에 들어간 공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습니다. 타자의 키에 따라 다른 스트라이크 존을 부여하는 건 모두에게 공평한 스트라이크 존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타자의 팔 길이에 따라 타자가 걷어낼 수 있는 공의 수가 달라지고 타자의 팔 길이는 타자의 키에 의해 결정되니까요. 하지만 존에 들어간 모든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건 아닙니다. 존 안에 들어간 공도 심판의 판정 하에 스트라이크 여부가 결정됩니다. 투수가 한가운데에 들어가는 공을 던졌다고 해도 심판이 볼을 선언하면 볼일 뿐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긴 합니다.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로 보이는 뻔한 공은 절대다수 스트라이크로 판정됩니다. 누가 봐도 볼로 보이는 뻔한 공은 절대다수 볼로 판정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예외는 있습니다. 아는 거라곤 스트라이크 존의 크기밖에 모르는 야구 무경험자가 봐도 볼인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반대도 차고 넘칩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반발합니다. 심판들을 모두 자르고 로봇 심판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네 맞습니다. 로봇심판은 투수의 공을 자동으로 판단해주는 공명정대한 기계입니다. 로봇심판을 세운다면 잘못된 스트라이크가 볼로 판정되는 모든 상황을 없앨 수 있습니다.

대학교 수시 전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학생들이 던진 공은 각 대학교들이 세워놓은 심판에 의해 스트라이크 - 볼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잣대 역시 상대적입니다. 신장의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스트라이크 존을 부여받듯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기준이 주어집니다. 누군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노력했다는 스토리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며 아무런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일궈낸 좌충우돌 속 성과물로 선발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수시에서도 여러차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와 제도 특유의 불투명성으로 수시는 여러차례 잘못된 제도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수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시는 공평한 경쟁하에 펼쳐지는 공정한 제도가 아니며 오직 정시만이 공평한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학생을 모두 똑같은 기준으로 순위 매기는 경쟁. 야구로 치면 모든 타자 앞에 똑같이 네모난 존을 만들고 그 존을 벗어난 공은 모두 볼로 매기는 식입니다. 심판의 존재와 상관없이 그 존에 들어간 공을 모두 스트라이크로 평가한다면 공정할까요. 키가 작은 타자. 팔이 짧은 타자일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존에 들어간 공이여도 그 공을 쳐내기 위해 키가 큰 타자보다 더 큰 힘을 들여야 합니다. 그 결과 야구는 키가 클수록 압도적으로 유리한 스포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지찬은 바깥쪽에 들어오는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을 당합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절대적인 스트라이크 존을 만들게 아니라 로봇심판을 도입해야 합니다. 단순히 수시를 폐지하고 정시 100%를 도입한다고 해서 공정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태어난 환경, 자라온 배경은 다릅니다. 우리에겐 사람마다 각기 다른 스트라이크 존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공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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