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잠실롯데몰 지하 1층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전시회 주제는 거리의 소음이란 의미의 스트리트 노이즈다.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 꽤나 부정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느낌이었다. 소음을 다루는 주제라면 아마 시끄러운 전시회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전시회는 주최자가 의도한대로 길을 따라가고 관람하면 전시가 끝난다. 수동적이며 정적이고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고 끝나는 전시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트리트 노이즈는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자유분방했다. 관객의 마음대로 진행되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운과 부

전시장에 들어가는 입구엔 귀여운 두 캐릭터가 있다. 행운을 상징하는 펠릭스와 부자를 상징하는 어린 아이 리치리치다. 펠릭스는 거대한 바람풍선으로 만들어졌고 관람객들을 놀래키는듯한 모습을 취한다. 리치리치는 돈다발을 들고 돈을 과시한다. 행운과 부를 갖고싶은 사람들이 펠릭스와 리치리치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필자도 사진으로 행운과 부를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전시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전시물 포토존을 즐긴 필자는 발길을 멈췄다. 전시의 방향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피티 전시회답게 도심 속 길바닥과 벽에 그림 그려진 느낌이었다. 마치 길 한복판 전시물들을 볼 수 있는 장소 같았다. 곧 필자가 가는 길이 전시회의 구성 순서였다.

관객의 낙서가 곧 예술

거대한 전시물을 지나면 레이저 큐브 장비를 활용해 관객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패드에 낙서를 하면 낙서가 전시회장 허공 위 아무 곳에 띄어진다. 마치 벽과 천장에 낙서를 하는 느낌이다. 길거리 예술의 정의를 초장에 보여주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했다. 직접 길거리 예술을 창작하고 느껴보며 작가들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그래피티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

“낡고 오래된 것들에 맞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고자 노력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각기 다른 사건과 장소 속에서 자신이 경험한 도시 속 소외감과 사회적 혼란을 그래피티라는 소통 창구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래피티 작가는 단속을 피해 재빠르게 도망가야한다. 때문에 쉽게 마르고 덧칠할 수 있는 스프레이와 스텐실이란 도구를 사용한다. 단지 벽에 어울리는 질감이면서 손쉽게 그릴 수 있기에 스프레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숨어서 재빠르게 그릴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 것이 스프레이였을 뿐이다. 그 스프레이가 그래피티의 시작을 이끌었고 그래피티의 상징이 됐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스텐실: 판에 구멍을 뚫고 잉크를 통과시켜 찍어내는 공판화 기법의 하나. 짧은 시간에 여러개의 작품을 복제할 수 있어 그래피티 작가들이 자주 사용한다.

스프레이와 스텐실 같은 그래피티 재료를 능숙하게 다뤄 그래피티 문화가 발전하는데 기여한 작가는 닉 워커다. 그의 작품에는 검은 중절모를 쓴 미스터 반달이란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는 닉 워커의 두 번째 자아다. 작가는 2006년부터 반달 시리즈를 작업해 대도시들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클래식한 스트릿 아트로부터 그의 독립성과 자유성을 드러낸 작업이다. 이런 닉 워커의 영향을 받아 이후 영국에서 뱅크시와 잉키같은 국제적인 그래피티 작가들이 배출됐다. 검은 중절모와 정장을 입은 남자와 대비되게 붉은색 하이힐과 하트 그리고 글씨들을 작품에 포함된다. 필자는 이런 닉 워커의 강한 개성에 첫 만남부터 매료됐다. 스스로 정의내리기 어렵던 그래피티의 모호한 개념이 닉 워커를 통해 나만의 개성과 흔적을 남기며 하고싶은 말을 전하라는 키워드로 이해 돼갔다.

자본주의 세상

작가 제우스는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밤 문득 창밖의 수많은 광고판 속 로고를 보고 흐르는 빗줄기에 영감을 받아 <Liquidated Logo>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본 익숙한 로고들이 빗줄기 흐르듯 흘러내린다. 거대한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현대 우리들에게 무언의 경각심을 준다. 흘러내리는 로고의 빗줄기는 누군가의 눈물을 연상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는 웃으며 돈을 번다. 하지만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그 대상은 가난한 빈곤층일 수도 혹은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지구일수 있다. 본질을 잊고 겉모습을 과시하려는 세상에게 제우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느꼈다. 흘러내리는 기법을 로고에 적용해 자본주의 사회를 꼬집는 제우스의 작품을 한참동안 보며 필자가 전시회에 매고 간 가방과 옷 그리고 마시던 콜라를 다시 보게 됐다.

 

예술과 불법 그 사이

그래피티 작가들은 과감하고 대범하다. 든든한 자본을 가진 명품 브랜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남의 집 담벼락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 고소를 당할 수 있으며 어쩌면 돈을 몽땅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래피티 작가들은 대범하고 자신의 작품을 남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과 환호를 받는다. 이들의 개성과 대범함 그리고 명확한 주제의식이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 그래피티라는 하나의 장르까지 된 것 아닌가.

 

그래피티를 관람하며 필자 역시 그래피티 작가들처럼 세상에 물음을 던지고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이들처럼 인정받기에는 시간이 걸려도 본인만의 방식대로 무엇이든 표현한다면 길거리 낙서에서 그래피티라는 장르가 생긴 것처럼 나만의 장르가 생기지 않을까?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