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차량을 단속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속의 기준이 10km/h라면 어떨까.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 대다수가 검문에 걸리고 벌금을 내는 처지가 된다. 상황이 이런데 경찰들은 과속범을 잡아 정의를 실현했다며 좋아한다고 생각해보라. 법이 시행되는 즉시 사람들은 엉망진창 같은 기준을 폐지하라고 화낼 것이다.

19일 법원에서 배재고ㆍ세화고의 자사고 지정취소 취소 처분이 내려졌다. 판결문과 함께 정부의 자사고 폐지 계획은 난항에 빠졌다. 취소 처분이 내려진 이유엔 자사고 폐지에 앞장선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가 정대한 잣대로 자사고를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 정부는 자사고를 유지하기 위한 재지정 점수를 70점으로 세웠다. 기존보다 10점 상승한 점수였다. 그러면서 상산고가 포함된 전북교육청엔 기준점을 80점으로 상향했다. 사회통합전형 입학자가 3%인 학교에 20% 이상이 입학하지 않으면 감점을 가하며 사실상 감점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상산고를 제외한 다른 고등학교들의 상황도 동일했다.

결국 정부가 세운 기준에 따라 10곳의 자사고가 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다.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기준을 세운 결과였다. 자사고 폐지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것과 상관없이 기준을 세우고 단속하기 위해선 공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 답.정.너는 곤란하다. 표면상의 공정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행동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동이다. 법원이 정부와 상반된 선택을 한 건 자사고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공정한 기준을 세우길 권고한 것이다. 정부가 모두의 동의를 얻으며 자사고를 개혁하기 위해선 자사고 정책의 과속 기준을 60km/h로 바꿔야 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올바른 기준에 올바른 정책이 깃든다. 법과 기준을 자신들의 목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어떤 법을 만들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달 김진욱 전 판사를 공수처장에 앉히며 공수처를 전격 출범했다. 하지만 공수처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따갑다. 지난해 12월 14일 리얼미터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4.2%가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아이러니하게 10월 있었던 공수처 설치 여론조사에선 61.5%가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이 공수처 설치 자체엔 찬성하지만 공수처를 세우기 위한 법엔 반대한다고 답한 것이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 출범을 위해 야당의 의견을 뭉개버린 개정안이었다. 이는 목적을 위해 결과를 바꾼 것에 반대하는 국민의 여론을 보여준다. 자사고와 마찬가지로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기 위해선 올바른 기준이 필요하다. 결과만을 쫓는 개정은 정부의 신뢰를 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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