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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의 사유로 고유한 ‘좁은 길’을 창조하라
  • 권남효 기자
  • 승인 2020.12.0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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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유명한 마태복음의 구절이다. 곧게 난 편한 길이 아닌 어렵더라도 의미 있는 길을 택하라는 격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험한 길과 좁은 문 앞은 늘 한산하다. 험준한 등산 코스보다 여유로운 길을 택하는 것은 우리의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본능을 거스르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쥐구멍에 비해도 부끄러운 나노 구멍 앞에 젊은 청년들이 몰려있다. 바로 취업 문이다. 지난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20대 이하 일자리가 1년 전보다 8만 2천 개가 줄었다. 1분기보다 감소 폭이 크고 증가 폭은 3년간 가장 적은 실정이다.

이에 취업 준비생들은 좁은 문에 자신을 욱여넣고 있다. 지난 5일 취업 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업 준비생 2천4백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취업 재수를 준비하고 있다. 그 목표는 공기업과 대기업이다. 그리고 같은 기관에서 실시한 또 다른 설문에서는 스펙 준비에 조바심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93%에 달한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에 ‘코로나 쇼크’까지 겹쳐 취업 전망은 더욱 암담해졌다.

불확실한 미래에 청년들은 생존과 안정성이라는 구시대적 가치로 회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대변혁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모든 것은 불안을 자극한다. 언제나 사회가 부르짖은 인재상은 이상으로 존재했으나 융합형 인재는 인간이 아닌 조물주에 가까운 수준이다.

혼란 속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두 가지 삶의 철학을 만들었다. 욜로족과 파이어족. 각각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이다)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의 앞 글자를 딴 신조어다. 욜로는 현재를 살고 파이어족은 미래를 산다. 결론은 다르지만 모두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전제하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이 정답일까?

고령의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두 가지 길 모두 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갈래 길 정확히 그 사이를 가리킨다. 길이라고 볼 수조차 없는 진정한 좁은 문 말이다. 그것은 바로 방황의 길이다. 그는 자신의 책 ‘참된 삶(La vraie vie)’에서 현대의 청년층이 목도한 위기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철학의 목표는 청년들에게 참된 삶에 대한 사유를 격려하는 것이라 역설한다.

바디우는 젊은이들의 타락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아테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과연 소크라테스가 초래한 젊은이들의 타락이란 무엇일지 자문한다. 그리고 그것이 돈과 쾌락 그리고 권력과 같은 일반적이 타락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디우는 젊은이들의 타락에 대해 “이미 뚫려 있는 길로 접어들지 않게 하는 것과 도시의 관습에 대한 순종에 간단히 바쳐지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참된 삶과 관련해 다른 방향으로 제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는 이를 위해 청년 내부의 두 가지 적을 주의하라고 한다. 하나는 즉각적인 삶에의 열정 다른 하나는 성공에 대한 열정이다. 전자는 허무주의에 대해 후자는 기존 권력을 숭배한다. 전자는 젊음을 불 싸지르는 것이고 후자는 쌓는 것이다. 욜로족과 파이어족의 양상도 이와 같다. 젊음은 이 두 가지 사이의 모순이다.

타락하라. 그게 바디우의 조언이다. 낡디낡은 과거의 잔해를 벗어나라는 말이다. 주어진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길을 만들라는 요청이며 주체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다. 전통으로부터 전례 없는 이탈을 맛본 청년들은 무한한 자유를 얻었다. 그 방향은 한 가지로 귀결되고 있다. ‘돈’이 전통적 이념의 자리를 점령했다. 이제 물질 숭배가 새로운 이념이며 자본주의적 계산이 법칙이다. 그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문구일 뿐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가능한 그의 말처럼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의문으로 이미 충분하다.

“참된 삶은 없다”는 랭보의 절망적인 전망은 이 시대에 만연한 감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우는 “참된 삶은 언제나 현존하지 않으나 완전히 부재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과 참된 삶에 대한 사유가 고유한 좁은 문을 창조해내는 청춘의 등을 밀어주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권남효 기자  hoy1326@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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