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조국 사태’부터 이번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하 ‘인국공 논란’)과 ‘공공의대’ 논란에 이르기까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가장 화두가 됐던 단어를 꼽자면 단연 ‘청년’과 ‘공정’일 것이다. 지난 여러 사안들을 두고 정부·여당을 비판하는데 누구보다 가장 앞장섰던 이들은 청년층 그중에서도 특히 대학생 계층이었고, 이들의 주된 논리였던 공정 논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공정 담론’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공정 담론이 모든 청년들에게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오직 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인 20대 대학생만을 위주로 하는 담론이, 각종 시험과 그 결과인 학벌을 자격 요건과 무기로 삼고 노력과 능력만을 기준으로 앞세우는 담론이, 진정 모든 청년을 위한 공정한 담론인지에 관해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1년여 간의 여러 논란들을 두고 나타난 공통된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평가 수단은 ‘수능’과 ‘공채’로 대표되는 시험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험들은 절대로 공정할 수가 없는 평가 방식임이 드러나고 있다. 상위 계층에 속할수록 시험에서 더 유리해지고, 이것의 계층 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져 왔다. 아무리 출발선과 트랙이 같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계층 구조를 따라가는 현실에서, 시험은 이제 노력과 능력의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 유일한 잣대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고 외치고 있는 이들은 그 시험에서 가장 유리한 이들이다. 결국 시험의 혜택을 오롯이 받을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경계는 점점 공고해지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공정 담론은 도리어 너무도 많은 청년들을 담론에서 배제해버린다는 것이다. 청년 노동자들부터 상위권 대학 재학생이 아니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이들과 그 밖의 수많은 이들까지, 여전히 우리가 인식하기 힘든 곳에는 다른 수많은 청년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앞서 언급한 시험의 온전한 수혜를 받기 어려운 대다수의 청년에 속하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오직 소수에 불과한 대학생들의 주장은 마치 모든 청년들의 주장인 것처럼 과대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소수에 속하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은 담론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며 담론으로부터 소외되고 또 소외되고만 있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담론에서 배제된 청년들은 특정 계층이 공유하는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인국공 논란’ 당시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무임승차자’와 ‘적폐’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들이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은 시험과 학벌 그리고 노력만을 앞세운 공정 담론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배제되고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재의 공정 담론이 과연 진정으로 공정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실로 나 자신을 포함한 청년층 모두에게 공정한 공정 담론을 바라본다면,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동안 담론에서 소외당했던 이들에게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소수의 상위층을 위한 공정의 지향점이 아닌, 나머지 다수를 포함한 모두가 지향할 수 있는 공정의 기치를 확립해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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