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의 충격에 휩싸여 있다. 직접 피해를 당한 부모들, 생존자들과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봐 왔던 많은 국민들도 슬픔과 분노와 무기력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히 300여명 되는 희생자들 대부분이 어린 고등학생들이었고, 이들의 희생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어른들과 미숙하고 무능한 정부의 사고 대응 때문이었다는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장과 선원들은 사고가 나자 어린 탑승객들의 대피와 보호의 책임은 팽개치고 자신들의 목숨과 안위에만 급급했다. 해경은 탑승객 중 한 명이 커튼과 소방호스를 밧줄로 삼아 긴급하게 학생들을 구조하고 있을 때 곁에서 지켜보고 서있기만 하는 등 안일하고 무책임한 초기대응을 했고, 또한 청와대나 관련 기관에 보고를 할 때 실종자 300명이 있다는 사실은 빼버리고 구조대의 규모는 과장되게 보고하는 등 허위 보고를 했다. 청와대와 사고대책본부는 이러한 부실 보고를 그대로 믿고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뒤늦게 사고 피해가 커지자 청와대가 사고 수습의 최종 책임기관이 아니라는 등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그야말로 세계경제규모 15위권이라는 대한민국의 허상 뒤에 감추어져 있는 총체적 부실과 무능과 무책임의 민낯을 그대로 들추어 보여준 것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무력감과 분노와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부실한 시스템과 매뉴얼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할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존재하는, 혹은 근래 들어 되살아나고 있는 퇴행적 권위주의 문화와 리더십의 문제이다.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사람들은 강자에 대해서는 복종하고 숭배하고 두려워하며 약자는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되기 쉽다. 또한 이러한 문화에서 권위주의적 리더는 자신을 한없이 강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고 다른 한편 약자와 아래 사람들은 깔보고 무능하다고 여겨, 일이 잘못되면 아래 사람들의 무능과 부족 때문이라고 처벌적 태도를 취하게 되기 쉽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적 문화와 리더십의 문제가 잘 드러난다. 전원 구조된 선박직 선원들은 제일 먼저 보호받아야 할 어린 승객들에 대한 책임은 내팽개친 채 그 와중에도 선주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와 선주의 안위를 우선시했다. 팽목항에 방문한 관료들은 사망자 명단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는 등, 아픔을 겪고 있는 실종자 부모들에 대한 공감능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과장된 구조활동만을 청와대에 보고한 해경의 행태는 권위주의 문화에서 무엇보다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만을 추구하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소홀히하는 태도를 잘 보여 준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잘못된 일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아래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간주해 버리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문제를 드러내고 ‘선장의 살인과도 같은 행위’ ‘관료들의 무책임한 행위에 대한 엄벌’ 등만을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사과를 지연해 가족과 국민들의 상처를 덧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 뼈아프게 느껴지는 문제는 희생자 아이들로 하여금 너무 착하게 어른들의 말만 믿고 가만히 있도록 만든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적 교육의 문제에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 학교와 부모는 기존의 권위와 시스템에 복종하고 협력하는 태도만을 바람직하게 여기며 기존 체제와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행동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교육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의 ‘가만히 있어라’를 강요하는 교육과 문화는 우리 사회 아이들의 창의성, 자율성 및 잠재력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희생되도록 만들 수도 있음을 세월호 참사가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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