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표현의 자유”가 화두다. 북미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종주의적 의도가 없이 ‘순수하게’ 재미로서의 패러디를 위해 행한 블랙페이스(blackface)는 그 자유가 보호받아야 할 표현인가? 혹은 오직 작품 속 세계(universe)에 존재하는 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면, 그것이 보여주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묘사도 예술적 표현으로서 그 자유를 보장 받아야 하는가? 아마도 최근 한 달 사이에 세간을 달군 두 가지 논쟁을 질문으로 만들면 이와 같을 것이다. 두 사건은 시차를 두고 일어났고 논란의 중심군이 되는 사회 집단도 차이가 있지만, 흥미롭게도 예술적 혹은 오락적 표현이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흥미롭게도 공통되는 대립항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배움의 필요”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이다. 블랙페이스 논란에서 문제제기한 흑인 방송인에게 소위 ‘역풍’이 분 것은 그가 소셜미디어에 영어로 쓴 구절, “This ignorance cannot continue!” 즉 “이와 같은 무지가 계속 되어서는 안됩니다!”라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그가 한국인들을 전 세계에 망신주려 한 것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이다. 배움에 대한 논란은 두 번째 사례인 웹툰 ‘검열’ 논란에서도 나타나는데, 가령 성차별적인 표현으로 지탄을 받은 동료 웹툰 작가를 안타까워하며 인터넷방송에서 의견을 피력한 한 작가는 그와 같은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독자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그런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미개하다고 규정하고 그 계몽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태도가 표현을 위축시킨다고 말한다. 두 사례 모두 배움의 필요를 역설하는 사람들은 상대집단을 무지하다고 무시하거나 상대의 지적 수준을 비하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표현의 자유”와 “배움의 필요”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대립하기 어려운 이 두 가치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표현” 그리고 “배움” 모두 이른바 지식의 자유경쟁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채택받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품에 불과하다는 인식론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배워야 할 지식, 교양 혹은 계몽을 이끌어낼 지식은 서로 간에 우선순위나 우열관계 없이 선반 위의 상품처럼 존재하며 ‘공평’하게 경쟁하면서 더 많은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론. 그래서 예술적이든 오락적이든 표현 역시도 표현하는 자의 성공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여러 경쟁하는 표현들 중 하나이며, 특정 표현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경쟁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인식론.

따라서 이것은 우리 사회에 크게 팽배한 ‘공정’이라는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면서 그 과정에서의 공정을 찾는다면 우리 사회는 올바르게 돌아가는 것이라는 그 감각. 이 부분에서 학보에 실린 교수의 칼럼이 ‘윤리’와 ‘공공성’을 들이민다면 고리타분하게 들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과연 지식은, 배움은, 표현은 그토록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투명하고 순수한 트랙 위의 경주마들인가 하는 것이다. 표현에 피해 입었다고 느끼는 이가 그 피해의 감각에 대한 배움의 필요성을 말한다면 그것은 그럼에도 표현할 자유에 대한 주장과 경쟁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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