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보건복지위원회는 최근 5년간 불안장애로 진료를 받은 국민이 3백50만 여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20대 불안 장애 환자의 증가율은 같은 기간 동안 86%로 가장 높았다. 전 국민의 7%가 불안 장애를 겪는 것이다. 불안은 단순한 정신 질환을 넘어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안은 시발점은 어디일까. 모르긴 몰라도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두려움이 불안한 감정을 키우는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우리의 인생은 매 순간 불확실함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오늘은 분명 지각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10분 일찍 나선 등굣길. 곧잘 오던 버스는 차고지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급한 대로 잡은 택시는 느긋하게 교문을 통과한다. 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손톱만큼의 고려 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불확실성에도 흔들리는 우리에게 입시와 취업 그리고 노후 등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을 앞두었을 때는 말할 필요도 없다. 두려움을 양분 삼아 불안은 우리를 압도한다.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위로는 잘 팔린다. 지난해 출간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와 같은 에세이가 큰 성공을 거둔 후 위로를 전하는 에세이들이 쏟아졌다.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서도 에세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참 불안한 시대다.

예로부터 인생은 ‘바다’의 이미지에 곧잘 비유됐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웅들의 이야기와 역경으로 표현되는 파도나 고래와의 사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삶이란 갖가지의 모양을 한 바위와 바다를 배경으로 섬광과 같은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코일은 말한다. <시핑 뉴스>의 주인공 코일은 실패에 일가견이 있는 위인이다. 거대하고 살찐 몸뚱이와 흉측한 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가족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코일은 소외됐다. 대학도 중퇴했고 취업도 실패했다. 어쩌다 만난 첫사랑이자 아내가 된 페틀은 코일을 떠난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두 아이를 변태에게 팔아넘기고 돈을 챙겨 떠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한다.

코일 투박한 두 손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직장도 사랑했던 아내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비극적인 상황에서 코일은 자신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간다. 그곳에서 코일은 새로운 삶을 산다. 두 아이를 성실하게 키우고 다시 신문사에 취직한다. 평생 사랑받지 못할 것 같던 그였지만 새로운 인연도 만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불안>에서 현대인의 불안을 통찰한다. 그의 분석에 대입해 보면 뉴펀들랜드로 떠나기 전 코일은 사랑의 결핍과 기대 그리고 능력주의 등 불안의 모든 요소에 점철된 삶을 살았다. 타인의 삶에 대해 떠들어 댔으며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길 바랐다. 사람들은 코일의 혐오스러운 외형에 눈길을 피했고 그 또한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했다.

알랭 드 보통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의미를 회복 시켜 준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땅에서 코일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 역시 ‘죽음’이었다. 새 직장에서 전 부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교통사고 취재를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거센 파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렇듯 바다는 코일에게 죽음을 상기하는 공간이었다.

사랑스러운 이웃과 아름다운 뉴펀들랜드 거대한 자연을 향유하며 코일은 불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받아들인다. 여전히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알몸을 바라보며 그저 ‘힘센 장사’같다고 느낀다. 부끄러움은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연으로 이어진 코일의 성장기는 한 편의 동화 같은 따듯한 울림을 준다. 그 이유는 우리를 불안으로 몰고 가는 최악의 상황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과 그것이 주는 안도감이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으로 맺어질 이야기다. 세워져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동전은 앞면으로도 또 뒷면으로도 넘어질 수 있다. 경험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우리를 구성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운가? 계획이 틀어질까 봐 두려운가? 그런 당신에게 코일은 질문한다. “누가 알겠는가”

불안은 시발점은 어디일까. 모르긴 몰라도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두려움이 불안한 감정을 키우는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우리의 인생은 매 순간 불확실함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오늘은 분명 지각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10분 일찍 나선 등굣길. 곧잘 오던 버스는 차고지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급한 대로 잡은 택시는 느긋하게 교문을 통과한다. 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손톱만큼의 고려 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불확실성에도 흔들리는 우리에게 입시와 취업 그리고 노후 등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을 앞두었을 때는 말할 필요도 없다. 두려움을 양분 삼아 불안은 우리를 압도한다.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위로는 잘 팔린다. 지난해 출간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와 같은 에세이가 큰 성공을 거둔 후 위로를 전하는 에세이들이 쏟아졌다.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서도 에세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참 불안한 시대다.

예로부터 인생은 ‘바다’의 이미지에 곧잘 비유됐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웅들의 이야기와 역경으로 표현되는 파도나 고래와의 사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삶이란 갖가지의 모양을 한 바위와 바다를 배경으로 섬광과 같은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코일은 말한다. <시핑 뉴스>의 주인공 코일은 실패에 일가견이 있는 위인이다. 거대하고 살찐 몸뚱이와 흉측한 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가족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코일은 소외됐다. 대학도 중퇴했고 취업도 실패했다. 어쩌다 만난 첫사랑이자 아내가 된 페틀은 코일을 떠난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두 아이를 변태에게 팔아넘기고 돈을 챙겨 떠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한다.

코일 투박한 두 손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직장도 사랑했던 아내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비극적인 상황에서 코일은 자신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간다. 그곳에서 코일은 새로운 삶을 산다. 두 아이를 성실하게 키우고 다시 신문사에 취직한다. 평생 사랑받지 못할 것 같던 그였지만 새로운 인연도 만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불안>에서 현대인의 불안을 통찰한다. 그의 분석에 대입해 보면 뉴펀들랜드로 떠나기 전 코일은 사랑의 결핍과 기대 그리고 능력주의 등 불안의 모든 요소에 점철된 삶을 살았다. 타인의 삶에 대해 떠들어 댔으며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길 바랐다. 사람들은 코일의 혐오스러운 외형에 눈길을 피했고 그 또한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했다.

알랭 드 보통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의미를 회복 시켜 준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땅에서 코일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 역시 ‘죽음’이었다. 새 직장에서 전 부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교통사고 취재를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거센 파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렇듯 바다는 코일에게 죽음을 상기하는 공간이었다.

사랑스러운 이웃과 아름다운 뉴펀들랜드 거대한 자연을 향유하며 코일은 불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받아들인다. 여전히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알몸을 바라보며 그저 ‘힘센 장사’같다고 느낀다. 부끄러움은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연으로 이어진 코일의 성장기는 한 편의 동화 같은 따듯한 울림을 준다. 그 이유는 우리를 불안으로 몰고 가는 최악의 상황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과 그것이 주는 안도감이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으로 맺어질 이야기다. 세워져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동전은 앞면으로도 또 뒷면으로도 넘어질 수 있다. 경험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우리를 구성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운가? 계획이 틀어질까 봐 두려운가? 그런 당신에게 코일은 질문한다.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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