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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공간 펭귄마을
  • 이종호 수습기자
  • 승인 2019.12.09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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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백만의 광주광역시는 빽빽하게 늘어선 아파트들과 화려하게 치장된 상가 건물들이 도심을 중심으로 나열돼 있다. 하지만 광주 도심 속을 걷다 보면 이 도시의 화려함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마을이 하나 있다. 옷장 안 새 옷들 사이에 놓인 헌 옷처럼 말이다. 작고 허름한 주택들과 구석지고 좁은 골목길을 고물들로 채워 넣은 아담한 ‘펭귄마을’이 그곳이다. 겉으로만 보기엔 누구도 굳이 찾지 않을 것만 같이 생긴 하나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마을은 광주의 다른 화려한 공간들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어떠한 특별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펭귄마을을 찾게 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 특별함을 찾기 위해 직접 광주까지 찾아가 펭귄마을 골목길을 걸어 보았다.

그곳에 ‘펭귄마을’이 있다

평소 가지 않던 길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도시의 화려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말이다. 펭귄마을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주민센터 뒤편에 위치한 펭귄 모양의 이정표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펭귄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펭귄마을은 마을의 골목길들을 채운 고물들을 보고자 매년 1백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 마을이다. 펭귄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마치 펭귄 같아 ‘펭귄마을’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이 마을은 도심 속 여느 주택가와 다를 바 없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그저 그런 마을들 중 하나였다. 오히려 버려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공간일 뿐이었다. 심지어 마을에 있는 빈집에 큰불이 나서 마을이 사라지거나 설사 남겨지더라도 그 상황이 더 비참해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펭귄마을은 사라지지도 더 비참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펭귄마을은 이를 계기로 더 이상 버려진 공간이 아니게 됐다.

화재 사건 이후 불에 탄 잔해와 쓰레기가 쌓여 흉하게 변하자 주민들은 그 장소를 청소한 후 그곳에 텃밭을 가꾸고 집에 있는 고물들을 가져다 놓았으며 펭귄텃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빈집이 있던 공간에서의 고물 전시가 펭귄마을 변화의 시작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고물 전시를 단순히 펭귄텃밭에 그치지 않고 마을의 골목길까지 확장했다. 그리고 골목길을 이루는 벽에 마을 이름과 같은 펭귄의 모습을 그려 넣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골목길을 걸어가 마을에 도착한 직후 감상하게 되는 것은 평소 우리가 겪는 익숙함과는 거리가 먼 광경들이다. 골목길 벽을 가득 메운 벽시계들과 펭귄 벽화들 그리고 집 대문마다 걸려 있는 시와 같은 작은 글귀들은 이 공간을 마치 예술의 거리처럼 느끼게 해 준다.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에서는 바닥에 그려진 오징어 놀이판과 벽에 그려진 낙서 같은 그림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글씨로 쓰인 간판들이 하나의 놀이터로 다가온다. 또 이 인위적인 물건들과 초록빛 풀들의 대비는 서로의 존재를 더욱 부각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에 시선을 두고 싶게 만든다. 이 아주 짧은 여행을 통해 펭귄마을이라는 작으면서도 커다란 예술 작품 하나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공간 속에서 다른 시간을 보다

펭귄마을의 골목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그 골목길의 한 가운데에는 평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펭귄마을의 주민들이 그곳에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평상은 <응답하라 1988> 속 아주머니들이 저녁때쯤 남편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골목길의 평상을 연상하게 한다.

펭귄마을에 사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뭐가 급하냐는 듯이 마을 평상에 앉아 한가로이 펭귄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을 구경한다. 자신들의 추억을 찾아 이곳에 온 중년의 부부는 이제 작동하지 않는 시계 앞에 서서 그 시절의 서로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직 앳된 얼굴의 청년 무리는 자신들의 익숙함과는 거리가 먼 펭귄마을의 새로움을 담고자 그들의 카메라에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키가 덜 자란 어린아이들은 마을의 고물들을 요리조리 둘러보고 만지거나 골목길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자 들뜬 표정으로 달려간다.

이와 같은 색다른 공간들을 거쳐서 마을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펭귄마을 변화의 시작인 펭귄텃밭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는 완전히 고물들로 가득해진 펭귄텃밭은 분명 버려진 것들로 채워진 버려진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버려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기획된 하나의 전시장처럼 느껴졌다. 큰 막대기에 걸려있는 태극기와 헬멧에 시선을 두면 6·25 전쟁 당시를 보게 되고 오래돼 보이는 기타와 장독대에 손을 대면 7·80년대를 경험하게 된다.

펭귄마을의 고물과 벽화들은 기성세대들에게는 일상이며 과거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그들의 익숙함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움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소한 것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여러 세대의 사람들로서 하여금 펭귄마을로 향하게 한다.

고물들에게서 의미를 찾다

쓰레기도 예술이 된다. 쓰레기는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것이고 예술은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이 어떻게 말이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쓰레기도 예술이 된다. 그것이 바로 정크아트다.

현대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이 현대 문명의 중심지인 도시는 그 발전 과정에서 온갖 쓰레기들을 토해낸다. 이 쓰레기들을 소재로 사용해 다시금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 정크아트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펭귄마을은 정크아트의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 배치된 고장난 시계와 부서진 액자 그리고 폐생활품을 이용한 작품 등은 그것을 찍기 위해 분주한 사람들에 의해 되살아났다. 버려진 것들도 다시 그것이 필요한 자리를 찾아가 더 이상 버림받지 않아도 되는 곳이 바로 펭귄마을이다.

되살아 난 것은 마을의 고물뿐만이 아니다. 과거 도시개발계획에서 배제돼 도심 속 흉물처럼 남겨져 있던 펭귄마을. 이 펭귄마을은 마을 속 고물과 벽화들을 찾는 사람들로 인해 도심의 흉물에서 꼭 찾아가야 하는 명소로 거듭나게 됐다. 스마트폰에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못했던 사람들도 펭귄마을에서는 고개를 들고 그 광경에 집중하게 된다. 과거 노인들만을 볼 수 있었던 마을에서는 청년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커다랗고 화려한 건물들 못지않게 이 아담한 마을도 많이 찾는다. 펭귄마을의 정크아트는 그 고물들뿐만 아니라 펭귄마을 자체도 되살아나게 한 것이다.

펭귄마을로부터 배우다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는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끊임없는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개발은 대개 낮고 작은 건물들로 이뤄진 기존의 공간들을 전부 재개발해 크고 화려한 건물들로 대체하는 신도시 위주의 도시 확장 정책이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개발정책은 결코 그 거주민들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다. 개발하려는 정부 또는 기업과 떠나지 않으려는 거주민들 간의 갈등이 낳은 참상은 우리가 그토록 많이 읽는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 속 하향식 재개발로 인해서 난쟁이 가족이 처하게 된 비극적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도시 재생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펭귄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펭귄마을의 고물 전시와 벽화는 모두 펭귄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이뤄졌다. 그렇다고 펭귄마을을 되살리는 데 큰 비용이 들어간 것도 아니다. 오로지 고물들과 벽화 같은 사소한 것들만을 이용하여 마을을 되살린 것이다.

화려함이 아닌 사소함으로 되살아난 펭귄마을. 더 이상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도시 재생 방법을 찾기를 원한다면 펭귄마을에 가 봐야 할 것이다.

펭귄마을 골목길을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피로감이었다. 자동차들의 덜컹거리는 기계음과 거대한 건물들의 위압감은 너무나도 익숙한 그렇기에 너무나도 피로하기도 한 것들이었다. 펭귄마을의 골목길은 천천히 걷든 서둘러 걷든 상관이 없다. 골목길을 지나가고자 하면 정면을 보고 걸을 것이며 펭귄마을을 구경하고자 하면 사방을 둘러볼 것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도심의 대로변은 서둘러 걷지 않으면 도태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시선은 오직 정면만을 향하게 된다. 도심의 이러한 획일성은 펭귄마을이 있는 곳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도심의 피로 속에서 펭귄마을에서 가졌던 그 여유와 자유로움이 그리워질 때면 기억 속의 펭귄마을 골목길을 걸어본다.

이종호 수습기자  jhl0011@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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