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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 쉬운 정보, 더 나은 세상
  • 권남효 기자
  • 승인 2019.09.2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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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을 통한 정보 평등을 꿈꿉니다‘ 피치마켓. 익숙한 단어들의 생소한 조합. 탐스러운 복숭아가 쌓여있는 가게의 정경이 떠오르지만 여기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글과 책을 만드는 곳이다.

피치마켓의 설립자 함의영 대표.한 때 그는 유엔환경계획 (UNEP) 한국위원회 팀장으로 근무했지만 현재는 느린 학습자의 실질 문맹 개선과 정보 평등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Q 피치마켓은 어떤 곳인가요?

A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들이 글을 읽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쉬운 글’ 컨텐츠를 만드는 곳입니다. 쉬운 글로 만들어진 책을 출판하고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Q 피치마켓이란 이름이 독특한 것 같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A 경제학 용어인 피치마켓에서 착안했어요. 피치 마켓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정보가 일치할 때 고품질의 재화가 거래되는 시장을 의미해요. 느린 학습자들의 정보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그 균형을 맞추자는 의미로 정했어요.

Q 제가 찾아본 바로는 발달 장애와 경계선 장애를 포괄하는 개념이 느린 학습자의 정의였는데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요?

A 말씀하신 대로 일부 학계에서는 그런 정의를 사용하긴 하지만 특정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에요. 실제로 독서 활동을 진행해보니까 장애등급이 있는 분과 장애 등급이 없는 경계선 지능이 있는 분의 문해력에 차이가 크게 없어요. 오히려 발달 장애 1급이 있는 분이 등급이 없는 분보다 더 책을 잘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느린 학습자라는 말을 장애 여부로 따지는것 말고 다른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느린 학습자는 함께 학습이 가능하나 학습이 다소 느린 분들이에요. 특정 누군가를 위한 글이라고 국한돼버리면 책을 집는 대상이 한정되거든요. 그래서 저희의 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찾을 수 있게 크게 구분을 두려고 하진 않아요.

Q 쉬운 글은 어떤 의미일까요?

A 쉬운 글은 이해할 수 있는 글이에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대선 공약을 예시로 들면 우리는 공약들의 이름만 봐도 기존의 지식들이 있기 때문에 유추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느린 학습자분들은 정보를 습득할 기회가 적죠. 공약집만 보고도 이해가 가능해야 하는데 다른 정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거죠. 그런 분들에겐 정보를 습득하는 것 즉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Q 쉬운 글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A 전체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장 핵심 과정이에요. 문학 작품 경우에는 5~6번을 읽어요. 그 후에 새로운 글을 쓰고 원작과 비교를 해요. 퇴고도 30회 이상 진행하고요. 힘들지만 사안의 이면에 담긴 의미와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퍼즐을 맞추듯이 단편적이 스토리를 하나로 묶는 것이 필요해요. 그 후에는 문장을 쉽게 풀어내는 것과 단어를 쉽게 바꾸는 과정이 있죠.

Q 피치 마켓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A 현재는 책을 만들고 독서 활동을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댄스 데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하지만 피치 마켓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을 했고 그 끝에 ‘글에 집중하는 것’이 저희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재는 활동 수를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피치마켓이 많은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아마 독서 활동 분야가 다양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Q ‘피치 마켓 대학생 독서 멘토단’ 등 대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A 우선 대학생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해 대학생들을 모집하고 캠패인을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잖아요. 물론 그런 활동도 필요하겠지만 저희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대학생들이 발달장애인들과 독서 활동을 하면서 큰 성장을 경험해요. 발달 장애인을 더 깊게 이해하기도 하고 독서 습관도 생기죠. 대학생과 발달 장애인 당사자들이 좋아하기도 하고요. 단순 봉사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대학생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어요. 지난 모집에서 400여 명이 지원을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한 상황이죠.

Q 직장을 그만두시고 피치 마켓을 창업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저는 늘 꿈이 창업을 하는 것이었어요. 국제기구에 들어가서도 개인적 바람은 국제 기구를 만드는 것이었고요. 그래서 빠르면 5년 길면 10년안에 퇴사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목표는 취직이 아니라 배움이였으니까요. ‘어떤 것을 가지고 할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문득 과거에 묻어둔 아이디어가 생각났어요. 바로 읽기 쉬운 글 만들기에요. 학부 전공이 법학이라 법전을 해석하려고 고군분투하던 때에 했던 생각을 실현시키기로 결정했어요. 처음에는 사업으로의 발전이 아니라 단순한 모임이었고 목표도 책 한권내기였어요. 한 권을 내고 끝낼 계획이었죠.

Q 그런데 어떻게 현재의 피치 마켓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나요?

A 멤버들과 함께 쉬운 글에 대한 논의를 했어요. 하지만 ‘쉽다’는 기준이 각자 달랐고 그 의견을 모으기가 어려웠죠. 그때 발달장애인 동생을 가진 분이 한 분 계셨어요. 그때 저희는 생각했죠. ‘그 동생이 읽을 수 있는 글이 쉬운 글이다’고 말이죠. 그 후에 첫 책을 냈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실패였어요. 실패했다는 사실에 힘들었고 오기로 두 번째 책에 도전하게 됐죠. 그렇게 이어져 오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Q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요?

A 두 번째 책을 만들 때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달 장애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특수학급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를 했어요. 일주일에 3번씩. 그때 회의감이 많이 들었죠. 퇴사는 했고 성과는 더디니까. 그때 편지 한 통을 받았어요. 42세의 발달 장애인의 편지였는데 저희 책 덕분에 40년 만에 처음으로 책을 읽어봤다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어요. 보람찼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 계기가 됐죠. 하지만 보람으로는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해요. 제가 극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관성인 것 같아요.

Q 관성을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A 쉽게 말하면 일정한 루틴을 갖는 것이죠. 목적을 설정한 다음 그에 도달하기까지 꾸준히 하는 거죠. 저는 무엇을 실행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매일 새벽 헬스장을 가야겠다고 다짐하면 매일 그렇게 하죠. 직장을 다닐 때도 당시 야근이 많아 11시에 퇴근을 했어요. 퇴근 후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노동법을 한번 공부해봤어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매일 쉬지 않고 2년 동안 했죠. 그런 성격 덕에 꾸준히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Q 전 직장과 피치 마켓 모두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계시네요?

A 네 저는 대학 입학을 고려할 때부터 졸업 후를 보고 전공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그 보다는 ‘어떤 성향의 사람이 되고 싶은 가’를 더 고민했던 것 같아요. 경영학과를 가면 경영학적 마인드가 생기고 공학을 전공하면 공학도의 마인드가 생기는 것 처럼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을 가지고 싶어서 법학과를 선택했죠.

Q 글 보다는 영상 등의 미디어 매체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글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글이에요. 글이 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잖아요. 영상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그게 글의 영역이죠. 특히 느린 학습자들에게는 글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 말씀드렸다시피 글이 정보습득의 기본인데 거기서 어려움을 겪다 보니까 느린 학습자들과 일반 사람의 격차가 생기죠. 그렇게 되면 대화가 어려워지고 사회성이 저하되죠.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한국말은 쓰게 해도 한국어는 쓰지 못하게 한 거죠. 글을 쓰지 못하면 정보가 단절되고 집합을 이루지 못해요.

Q 장애인의 인식개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A 저의 경우는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었어요. 하나의 예로 당시 발달 장애인 참정권에 대한 시위가 많았어요. 발달장애인들도 투표권이 있지만 공약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참정권이 보장되는 것인가라는 논란이 있었죠. 그때 저는 직접 공약집을 만들었어요. 제가 하는 방식은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죠. 이런 움직임들도 사회를 바꾼다고 생각해요.

권남효 기자  hoy1326@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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