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학보사의 편집권, 하루아침에 일궈낸 것이 아니다.

우리 학교의 개교 이듬해인 1974년 이양식(공경‧73) 동문과 이인현(공경‧73) 동문의 주도로 창립된 아주대학보사는 총 8명의 학생 기자들과 함께 시작됐다. 이들이 학보사를 구성하고 학보 발행을 시작한 이유는 세상의 이야기를 학우들에게 알리고 동시에 학우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으리라. 하지만 학보사는 학내 기구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학교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간섭의 핵심에는 ‘편집권’이 있었다.

편집권이란 신문사가 신문을 편집 및 발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체의 관리를 행하는 기능을 말한다. 매일경제용어사전에는 편집 방침을 결정하고 보도의 진실을 확보하며 공정을 꾀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편집권이라고 명시돼있다.

학보사 창립 당시 우리나라는 헌정 체제가 아닌 유신 체제로 통치되고 있었기에 기성 언론과 대학언론을 막론하고 그들의 글은 모두 검열의 대상에 속했다. 실제로 본보의 창립 이래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주대학보사 기자들은 주간교수의 사전 검열을 따라야 했다. 기사를 수정하라는 불합리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고 심지어는 글의 일부가 삭제된 채 신문이 발행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2014년 5월 발행된 본보 40주년 창간호 기사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가 담겨있다. 148호의 ‘민족의 정당한 요구, 반핵운동’이라는 기사는 원본에서 3분의 1이 삭제돼 실렸다. 또한 147호의 ‘미국의 혁명 예방과 한국’이라는 기고 글도 주간교수의 판단하에 일부가 삭제되는 등 학생 기자들의 기사가 아닌 일반 학우의 글 역시 검열의 그늘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결국 1986년에 이르러 편집권을 쟁취하기 위한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된다. 자체 편집권을 획득해 검열 없는 학보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학생 기자들은 학보 발행을 거부하고 대자보를 게시했다. 심지어 당시 편집장이었던 이병원(기계‧84) 동문은 단식농성을 벌였다. 이와 같은 투쟁끝에 학보사는 학교 측의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후 이 동문과 학생처장의 면담이 이어졌고 강제로 수정 및 삭제됐던 기사들을 학보에 실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하지만 이는 편집 권한을 일회적으로 회복했을 뿐 여전히 온전한 편집권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1995년에 접어들어 당시 제6대 총장으로 김덕중 전 총장이 취임해 1999년까지 임기가 이어졌다. 이후 김 전 총장은 교육부 장관으로 인준돼 총장의 자리를 내려놓게 된다. 새로운 총장으로 이호영 전 총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8개월여 만에 교육부로부터 해임된 김 전 총장이 이 전 총장의 임기 도중인 2000년 2월 재취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본보는 편집권 투쟁을 위한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딘다. 이 전 총장을 직접 인터뷰하며 취재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김 전 총장이 이 전 총장에게 압력을 가해 불법으로 재임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정론직필과 실사구시에 입각해 학보사는 김 전 총장을 우리 학교의 제9대 총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같은 해 3월 발행인란에 김 전 총장의 이름을 싣지 않고 여백 상태인 채 개강호를 발행하고자 했다. 이에 주간교수였던 조성을(사학) 교수는 “발행인 성함을 뺄 것이라면 자신이 주간교수 즉 편집인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개강호는 발행인뿐만 아니라 편집인 역시 공란인 채 오직 편집장의 이름만으로 발행됐다. 이후 학교 측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인쇄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결국 학보는 발행이 중단된다.

학보의 발행이 중단됐지만 학보사는 쉼 없이 움직였다. 위와 같은 사태가 학보사에 대한 학교의 탄압이라고 판단한 학생 기자들은 성명 운동을 벌이고 대자보를 게시했으며 학내 사태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호외판을 발행한다. 실제로 2000년 3월 22일 발행된 호외판에는 ‘김덕중씨 복귀 따른 내부적 갈등 심화’라는 보도 기사와 ‘공인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사설 그리고 김상대 교수협의회 의장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박찬규(국문‧98) 동문은 “3개월 이상 학교와 줄다리기를 하며 기자들이 많이 지쳐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길고 긴 고군분투가 열매를 맺듯 기획처장이 박 동문에게 먼저 만남을 제의한다. 그 후 이어진 면담에서 박 동문은 두 달여 간 미집행된 예산을 전부 줄 것(이 예산으로는 아주대학보 축쇄 영인본이 만들어졌다.)과 편집권을 학보사에 귀속할 것을 학교로부터 약속받았다. 5월 31일에는 중단됐던 학보 발행 역시 다시 시작됐다. 박 동문은 “김 전 총장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건이 아주대학보 역사의 한 획이 됐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이것을 계기로 인정받은 본보의 편집권 독립은 대학언론들 중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본보의 편집권 독립이 가지는 의의

앞서 말했듯이 편집권은 편집 방침을 결정하고 그를 통해 기사의 진실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 말은 독립된 편집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해당 언론사는 언론의 본연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0년 이전까지 본보의 편집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은 학교와 주간교수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학보가 학생기자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담아내는 수단이 되지 못한 경우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대학생들은 학원 자주화를 지향했으며 그렇기에 학우들이 학교의 운영 주체로서의 입지를 갖추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다. 박 동문은 “학생이 학교의 재단과 이사진과 대등한 위치에서 발언하는 구성원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편집권 쟁탈은 학원 자주화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고 말했다.

학보 창간 28년 만에 편집권 독립이라는 결실을 맺은 이후 학생 기자들은 학보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결정하는 단연 학보의 발행 주체가 됐다. 박 동문 역시 학교와의 면담 직후 학보사와 학보에 찾아온 변화를 기억한다. 박 동문은 노동절을 맞이해 1면에 전태일의 사진을 실은 학보를 주간교수로 새로 부임한 장원호 교수에게 가져다 보여줬다. 그러자 장 교수는 박 동문에게 “해당 내용을 다루려면 이와 관련된 기사의 비중을 더욱 키우는 것이 좋겠다”는 파격적인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더불어 장 교수는 주간교수의 사명을 다할 때까지 학보사의 편집권을 일절 침해하지 않았다.

또한 학보에 실리는 기사의 소재와 단어 선택 등 이외에도 계속된 갖가지의 시도들이 편집권 독립의 증거였다. 학보 차원에서는 지면에 실리는 ‘아주대학보’의 글씨체를 아주대학보사 현판에 새겨져 있던 글씨체에서 우리 학교 로고에 있는 글씨체로 변경했다. 또한 학보 지면의 편재 역시 코너 면을 축소하고 기획 면을 대폭 증설했다. 그리고 다음 해 편집장을 맡은 권준범(산공) 동문은 학보를 일간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성 언론사에서 사회면 기사를 사 오고 학보만의 자체 광고를 제작해 운영하는 내용 등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장 교수에게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기자 차원에서는 박 동문이 당시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에 소속돼 조선일보 반대 운동의 일환인 서명운동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 동문은 “이와 같이 전에 비해 매우 자유롭고 진취적인 도전이 가능했다”며 “학보사의 편집권이 종속돼 있었다면 이런 일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현재 본보의 모든 발행 과정을 살펴보면 여전히 그 주체는 학생 기자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이는 최근에 개정된 아주대학보사 운영회칙에도 명시돼있는 내용이다. 기자 개인의 가치판단과 관심사에 근거한 소재를 물색하며 각각의 취재 진행 정도에 따른 내용은 정기회의에서 다함께 논의한다. 편집장과 부편집장 및 정기자와 선임기자의 판단 하에 일정 부분 제재가 가능하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와 설명을 동반해야 한다. 마감을 거쳐 탈고하는 과정은 선임기자와 후임기자 또는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를 통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이뤄진다. 지면 편집 시에는 편집실장의 도움을 받지만 학생 기자들의 의도와 희망 사항을 제시하면 그것을 기술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에 그친다. 특히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주간교수에게 미리 소재에 대한 허락을 구하거나 마감 이전에 초고를 공유하는 등 편집권 침해의 여지가 있는 일체의 행위를 수행하지 않는다. 주간교수는 그저 기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 기자 작성 시의 어려움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지원자일 뿐이다.  

 

Tip. 아주대학보사 운영회칙 제1장 4조 1항
본사는 자율적인 취재권과 편집권을 갖는 교내 독립 언론기구로써 대학 내외의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다. 
아주대학보사 운영회칙 제2장 14조
(전략) 주간교수와 간사는 편집권이 없으며 본사가 발행하는 학보의 기사에 편집권에 대해 영향을 미치려고 할 경우 본사 기자들은 저항권을 가질 수 있다. 주간교수와 간사는 본사의 기자들과 상하 관계가 아니며 수평적인 관계다.

 

 

타 언론사에서는 편집권 침해 여전해

본보는 편집권 독립을 이뤄낸 최초의 대학 언론사다. 또한 현재까지도 편집권이 언론사 자체에 귀속되지 않는 대학 언론들이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학보인 ‘대학신문’은 서울대학교와 주간교수에 대한 항의를 표현하기 위해 2017년 3월 신문의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주간교수가 삼성의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한 기사를 싣지 못하게 했던 것과 학생 기자들이 중요하게 다루고자 했던 분교 캠퍼스 설립 사안이 아닌 서울대 개교 70주년을 비중 있게 다루라는 통보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백지 발행 이후 그것은 크게 화제가 되고 대학신문에 가해졌던 압력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많은 서울대 학우들의 지지가 쏟아졌고 결국 검열의 주축이었던 주간교수가 교체되는 성과를 이뤘다.

충남대학교 학보인 ‘충대신문’은 2017년 5월 발행이 강제 중단됐다. 총장 선출에 관련된 기사를 삭제하라는 주간교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 일동과 주간교수의 의견 대립이 이어지자 주간교수는 충대신문의 발행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얘기해 충남대학보사의 편집권을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발행 요일인 월요일이 돌아왔지만 충남대학보사는 새로운 학보가 아닌 현 사태에 대한 입장문으로 학우들을 마주해야 했다.

위와 같은 사례에 대해 박 동문은 “학보사는 학교의 기관이지만 학생 자치 형태로 실질적인 운영이 이뤄진다”며 “총장과 주간교수의 이름을 달고 있다는 이유로 논조를 바꾸려는 태도는 그릇된 것이다”고 견해를 밝혔다. 지난해 본보의 편집장이었던 전선규(정외‧3) 학우는 “학보사의 주간교수는 동아리의 지도교수와 유사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효율적인 수행 방식에 도움을 주는 역할일 뿐 단체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정해주는 역할이 아니다”고 전했다.

또한 대학 언론뿐만 아니라 기성 언론 역시 검열과 제지의 위협에서 벗어나있지 않다. 2017년 11월 발행된 한겨레21 1186호의 표지 기사를 한겨레 양상우 대표이사가 삭제하라고 주문했다는 내용의 의혹이 일었다. 한겨레 노동조합이 양 대표이사를 감사한 후 편집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한겨레21 내부에서는 감사 결과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지난 4일 ‘편집권 독립과 올바른 신문 진흥을 위한 언론 노동자 선언’이라는 주제로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전국언론노조)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윤석빈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은 “대다수의 언론사 특히 신문사에서는 아직도 편집권 독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편집권이 완전히 독립된 매체를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 대학언론 위기에도 편집권은 빛난다(2018)

한겨레21 편집권 침해 논란이 남긴 것(2018)>

 

 

편집권을 손에 쥐고 본보가 나아갈 방향은

힘겹게 얻어낸 편집권 독립은 그곳에 몸담고 있는 언론인들의 역사고 투쟁이며 결실이다. 또한 편집권을 쥐고 있는 현재의 아주대학보사라고 할지라도 편집권에 대한 재고와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박 동문은 “지금의 학보사는 언론의 자율이 곧 언론사의 자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율은 언론인들이 마땅히 내야 할 목소리를 내도록 해주는 자유로움을 뜻한다. 그러나 언론사의 자율은 개인의 이익을 좇아 언론인의 의무를 저버릴 수 있도록 두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불건전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기사들을 쏟아내 오히려 사회에 소음을 빚는 언론사들의 모습은 언론의 자율이 아닌 언론사의 자율을 따르는 모습인 것이다.

아주대학보의 오랜 독자인 장하림(사회‧3) 학우는 “학보가 편집권을 얻어낸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지만 편집권 투쟁 당시와 현재의 사회 모습은 매우 다르다”며 “지금의 학우들이 궁금해하고 알고자 하는 내용을 학보에 담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동문 역시 같은 의견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부당한 일이 찾아왔을 때 언제든지 예전과 같은 계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실력은 길러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주대학보사 서약서의 첫 번째 항목은 ‘사실에 입각한 옳은 글을 쓰겠다는 정론직필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학내 언론의 사명감을 갖고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정론직필은 정당하고 이치에 합당한 의견이나 주장을 무엇에도 영향 받지 않고 사실 그대로 적는 것을 그리고 실사구시는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즉 두 개의 사훈을 꿰뚫는 핵심은 ‘사실’만을 전하는 언론인 및 언론사가 되자는 것이다.

홍익대학교 법학연구소 김명수 연구원은 ‘언론기관의 자유 – 보도의 자유와 편집권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편집권의 주체를 발행인과 편집인 그리고 편집장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언론의 자유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편집권의 주체를 발행인과 편집인 그리고 편집장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 몸담고 있는 모든 언론인이 그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1971년 독일 뮌헨에서 채택된 ‘언론인의 권리와 의무 선언’에는 언론의 자유를 향한 지향점이 드러나 있다. 그중 제3조는 ‘기자는 강압적으로 직업적 행위를 수행할 필요가 없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대되는 의견을 표현하도록 강요당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기자는 어떤 이의 강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신과 단체의 신념과 양심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편집권 독립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매우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아주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