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품격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존엄으로서의 자세를 주장하는 책이다. 품격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얻어지는 가치다. 교양있는 몸짓, 점잖은 목소리 등 주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남들의 시선을 만나 품격을 완성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누구나 품격을 욕망한다.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은 이러한 품격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자신의 역할 속 행동의 의도를 함께 공유하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김원영은 그것을 존엄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존엄하게 대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도 남의 선망을 받는 데서 그치는 품격과 달리 존엄은 나의 의도를 적나라하게 노출함으로써 상대의 상호작용에 마음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결핍’은 존엄으로서의 관계를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존엄으로서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스스로의 장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할뿐더러 심지어는 누군가의 품격의 도구로서 전락하기도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 선언을 한 영혜가 겪게 되는 일들과 그 감정을 표현한 소설이다. 아내, 딸, 언니로서 해야 할 역할만을 수행하고 살았던 영혜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개에 대한 트라우마를 직면하며 갑작스레 채식주의 선언을 한다. 자신이 지켜야 하는 품격의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욕망에서 비롯된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품격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녀에겐 남편의 멸시와 가족으로부터의 폭력만이 돌아갈 뿐이다. 어쩌면 한강이 말하고자 한 건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마지막에 영혜가 되고자 했던 나무와 같이 고립된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은 <채식주의자> 속 영혜를 향한 폭력과 닮아있다. 장애인을 품격의 도구로서 이용하는 모습과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에 갇혀 고립된 삶을 택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그럼 김원영과 영혜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주위의 환경의 차이가 있다. 김원영에게 있어서는 그녀를 존엄해준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를 향한 존엄의 제스쳐는 결국 그녀가 세상에 건네는 존엄으로 발전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만들어냈다. 아무에게도 솔직함과 존엄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먼저 건네는 존엄이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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