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을 허하라” “성인이 성인물 보는 게 죄냐?”

2월 12일 정부가 SNI 차단 정책을 시행해 여러 포르노 사이트 접속이 차단됐다. 몇몇 남성들은 당당히 거리로 나와 인터넷 검열 금지를 외쳤다.

당연하게 소비했던 포르노그래피(이하 포르노)가 처음으로 당연시되지 않았다. ‘야한 동영상(이하 야동)’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한국 포르노. 지금껏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용인한 국산 야동의 속사정을 살펴보자.

 

포르노와 디지털 성범죄는 다르다

포르노그래피란 ‘성적인 자세와 행위를 담고 있는 사진과 영화 그리고 인쇄물 등으로 대중으로부터 점잖지 않다고 여겨지는 모든 물건’을 일컫는 단어다. 미국에서 포르노는 성기와 음모가 노출되는 하드코어와 그렇지 않은 소프트코어로 구분된다. 포르노는 주로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소비되며 비디오, 게임, 만화 등 매우 폭넓은 분야에 걸쳐 사용된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불법 촬영 범죄가 불거지며 포르노와 범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영상 포르노의 가장 대표적인 범죄 유형이 디지털 성범죄다. 디지털 성범죄란 디지털 기기 및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온·오프라인 상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유포 ▲유포 협박 ▲저장 ▲전시를 목적으로 동의 없이 상대의 신체를 촬영한 영상물을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이라고 부른다. 최근 많은 이슈를 불러 일으킨 ‘불법촬영물’ 또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의 일종이다.

포털에 ‘국산’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성인 사이트 링크가 나온다. 링크의 방문 횟수에 따라 가장 많은 조회를 기록한 페이지를 상단에 배치하는 포털 시스템은 국산 야동의 수요가 절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도 국산 야동은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국산 야동’이라고 부르는 영상의 대부분은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포르노를 모두 음란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음란물에 관한 법률’과 ‘아동청소년보호법’에 따라 한국에서 포르노를 제작하고 상영하며 배포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다시 말해 ‘19금’ 딱지가 없는 영상은 대부분 범죄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불법 촬영물의 대상은 대다수가 여성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2017년도 통계자료에 따르면 작년 접수된 2백6건의 피해 사례 중 남성이 7명 여성이 1백93명 남녀 동시 피해가 역시 6명으로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모바일 기기가 보급되며 아마추어 촬영이 간편해졌고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 역시 높아졌다.

또한 경찰청의 국회입법조사처 제출자료에 따르면 2016년 소라넷 폐쇄를 포함해 대대적으로 음란물 사이트를 규제하기 전까지 불법 촬영 및 불법 촬영물 등의 유포 행위의 발생·검거 건수가 꾸준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포르노라는 말로 이를 정리하지 못할 정도로 디지털 성범죄의 영역은 비대해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이라는 악몽

국내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의 구체적인 규모는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 없다. 경기대학교 홍성철(미디어영상) 교수는 “국산 포르노 산업은 없다”며 “한국에서 영등위의 승인을 받지 않은 포르노 자체는 음란몰로 규정돼 포르노 산업 자체가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얼마나 많은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이 유통되고 있는가를 알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성범죄의 유형적 특성은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의 심각성을 더한다. 다른 성범죄가 과거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관한 것이라면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는 언제든 유포 현장과 유포물 그리고 유포 위험을 끊임없이 대면해야 하는 위험에 놓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누리 팀장은 “한 번 올라온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한 피해자의 경우 영상 삭제 조치 후 사건 종결을 앞두고 그다음 날 몇백 건이 넘는 영상이 다시 발견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피해자가 당시 촬영에 찬성했다면 이 또한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 팀장은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을 향한 공격과 낙인이 굉장히 심각하다”며 2차 피해를 비롯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일부 피해자 중 유포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촬영에는 동의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법적 제도의 허술함이다.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유포의 경우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단순 시청의 경우 법적 처벌 근거가 부족해 수사가 어렵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촬영한 영상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촬영물을 삭제하라고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 역시 디지털 성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학교 인권센터 성 평등 상담소 조현연 전임연구원은 “우리 학교에서도 카톡방 영상물 유포와 음란채팅 그리고 불법 촬영 미수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조 전임연구원은 “상담은 받았지만 공론화를 원하지 않는 분들도 존재했다”며 “피해자들은 자신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법적 제도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미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피해자 당사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

 

포르노, 규제해야 하는가

아주대학교 이선이(사회) 교수 : “포르노그래피와 폭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내용 자체가 폭력적일 수도 있지만 포르노의 제작 과정 자체도 폭력과 연결된다. 미성년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타의에 의해 포르노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 포르노 자체가 가진 여성에 대한 비하와 대상화의 문제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물론 포르노그래피는 소비될 수 있다. 제재하긴 힘들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비자로서 분별력을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포르노는 대상을 향한 비하·대상화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같이 공유하는 매개체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이 대부분인 지금 포르노 규제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인권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선언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누리 팀장 : “정부의 규제는 당연하다. 이제껏 온라인 공간이 이렇게까지 무정부 상태였던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시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유에 대한 침해라면,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것이 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SNI 차단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일반 상업용 포르노라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포르노 산업 속 여성의 선택을 온전한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포르노 속에서 여성은 재화로서 취급되고 품질을 평가당한다. 현실의 여성을 향한 차별은 거기서 시작된다.”

경기대학교 홍성철(미디어영상) 교수 : “현실적으로 포르노 규제는 많은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는 사업이며 그 실효성 또한 적다. 한국은 포르노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은 채 섣부르게 모든 포르노를 음란물로 취급해 규제했다. 불법 촬영물이 주는 성적 만족도가 일반 상업용 포르노보다 작음에도 한국인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소비하는 이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포르노의 합법화를 통해 양질의 포르노가 시장에 유입된다면 지금과 같은 아마추어식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은 곧 사라질 것이다. 물론 현재의 디지털 성범죄 소비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도덕의 영역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없애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다.”

 

포르노의 본질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부터 산업 구조 속 약자에 대한 착취 그리고 합법화에 대한 요구에 이르기까지 포르노 규제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하나의 일치하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르노를 소비하며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현재 정부의 규제에 대한 실효성을 둘러싸고 공방이 오가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소위 ‘국산 야동’이라 불리는 포르노 대부분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이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포르노를 소비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한 채 범죄를 고집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당신은 침묵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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